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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민 연구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비교영성 -종합토론
 WRITER: 관리자  (1.♡.172.206) DATE : 14-01-24 10:46 READ : 971
   종합토론 비교영성.pdf (1.1M), Down : 15, 2014-01-24 10:46:45
종합토론
**본고는 2013년도 운주사에서 출간된 <불교와 그리스도교, 영성으로 만나다> 의 마지막 부분으로 종교대화 강좌를 마친 후 종합토론을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수술한 직후였으므로 이 토론에 직접 참석치 못했고, 그 이후 종합토론에 참석하신 분들의 견해에 대한 저의 의견을 함께 첨부하여 정리했습니다.)

김승혜_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최현민 수녀님과 함께 씨튼 종교 대화연구원에서 일해 왔고,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25년 정도 강의해 왔습니다. 오늘 종합토론에 함께 해주신 두 분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종범 스님께서는 저희와 함께 15년 동안 종교 대화를 해오셨고, 저희 연구원에서 펴낸 책인 󰡔선불교와 그리스도교󰡕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수행󰡕의 공저자이십니다. 저는 항상 스님을 선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총장을 하시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토론에 참석할 당시에는 중앙승가대학 총장을 역임하고 계셨고 현재는 통도사 스님으로 계심.) 그것도 연임까지 하셨으니……. 우선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그리고 서명원 신부님께서는 예수회 소속이시고 프랑스어권 캐나다 출신이십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불교를 가장 잘 이해하시는 신부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에 오신 지가 한 20여 년 되셨나요?

서명원_ 처음 왔을 때가 1985년입니다.

김승혜_ 네, 85년인가요. 지금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불교 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구요, 불교와 그리스도교 양쪽 수행을 하시기에 이 토론에 아주 적합한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감사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먼저 종범 스님께 최현민 수녀님의 18시간 강의를 들으신 소감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종범_ 아까 소개받은 종범입니다. 최현민 수녀님께서 요약하신 강의 초안과 테이프를 매달 함께 보내 주셨는데 매달 듣지는 못했고, 차곡차곡 쌓아놓았다가 한 달 전쯤부터 자동차에서 듣거나 시간 있을 때 쉬는 시간을 통해 듣고, 또 그것을 마음으로 생각도 해보고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첫 번째는 최현민 수녀님께서 불교학에 관련된 학습 분야가 나름대로 상당히 넓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애로가 많습니다. 우선 학습해야 할 시기가 초기 불교에서부터 근현대 불교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장구하구요. 또 지역을 중심으로 특성화된 불교가 발달되었고 한 지역에서도 종파 중심의 불교가 발달해서 불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도 불교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내는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굉장히 고민하게 되고, 또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 이걸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하는 망설임을 갖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공부한다는 건 어렵고 학습 과제도 많은데, 최 수녀님께서는 불교의 많은 분야를 학습하시고 연구도 하시고, 또 스스로의 관점으로 생각도 하셨음을 테이프 청취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 하시려면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요, 또 강의 시간에 강의에 참여하신 분들을 위해 강의 준비도 열심히 하셔서 아주 의욕적으로 강의하신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강의하신 분의 노고와 학습에의 열정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종교적 성향인 배타성, 포괄성, 다원성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종교인이 이웃 종교를 바라볼 때는 때로는 배타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포괄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다원적이기도 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배타적일 수 있고 배타적이면서 동시에 다원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현민 수녀님께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이웃 종교를 바라보기에 자연적으로 그런 입장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불교를 강의하고 연구하면서도 본인이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라는 것은 배타적 포괄주의, 포괄적 배타주의 입장이 동시에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도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종교를 선택한 사람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호 이해를 위해 이웃 종교에 대해서 학습도 하고, 학습은 아니라도 섭렵은 할 수 있다고 봐요. 섭렵이라는 말은 그냥 두루두루 관광하듯이 보는 거죠. 하지만 그런 태도가 신앙화될 수는 없기에, 이런 입장이 다원적 배타성이고 또는 포괄적 배타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서로의 경험도 나누고, 서로의 교리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기 정체를 지키는 데에는 아주 좋은 방향을 제시했다고 느껴졌습니다.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만남을 20세기 문명의 진행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20세기에 일어난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만남보다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이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토인비의 말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에서 어떤 점을 중대한 사건으로 들 수 있겠느냐 했을 때,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하느님의 신적 존재를 그동안에는 기도를 통해 바깥으로 찾아가는 지향적인 존재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외재적인 하느님에서 내재적 하느님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또 앞으로 그런 관점에서 영성신학이 발달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교와 불교와의 만남은 하나의 의미가 있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현민 수녀님이 지향하는 바는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존재론적 관심보다는 실존론적인 관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조론만 하더라도 창조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실존론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루하루 무엇을 하며 살아갔는지 바로 그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창조지, 한 번 이루어진 것을 그대로 버려두는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본인도 일상생활 속에서 내 기도가 어떻게 나타나고 내 생활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중시한다고요, 또한 최 수녀님은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외재적 하느님에서 내재적인 하느님 쪽으로 더 지향하게 되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 확인할 부분이 있고, 의문 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확인할 점은, 내재적 하느님이라고 할 때 ‘내재’의 의미가 뭐냐는 겁니다. 내면이란 말은 틱낫한 스님의 번역된 책에도 많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내면의 의미가 뭔가 하는 겁니다. 내면이 자기 가슴속인지 머릿속인지, 몸을 경계로 해서 몸 안을 내면이라 하고 몸 밖을 외면이라고 하는 것인가요? 외면은 장소적 개념인지, 아니면 사유적 개념인지요. 내가 생각하면 내면이 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외면이 되는 것인지요. 이건 개념상으로나 언어상으로나 확인해야 될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에는 내면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건 교육론적으로 홍보적인 용어는 될 수 있을지언정 경전 상에서 내면이라는 말은 쓸 수 없거든요. 왜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 또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도道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불성이 어디 있는가, 내 몸 안에만 불성이 있는가, 그러나 몸 안을 찾아보아도 불성은 없어요. 󰡔능엄경󰡕에서는 마음을 찾습니다. 그런데 몸을 다 조사해 봐도 마음은 없거든요. 그럼 마음이 몸을 떠나 있는가 하면 떠난 데도 없어요. 허공에도 없고, 어떤 곳에도 마음이 존재하는 데는 없어요. 몸 안에도 없고 몸 밖에도 없고요. 그럼 마음이 없는 거냐 하면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도무방소道無方所, 곧 도는 있는 곳이 없다고 하지요. 또 심부재내부재외心不在內不在外라 하여 마음은 안에도 밖에도 없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도나 마음, 아마 신도 여기에 포함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신이 몸 밖에 있다면 몸은 신이 없는 장소가 되겠죠. 몸 안에 있다면 몸 밖은 신이 없는 장소가 되겠고요. 그럼 유일신도 아닐 것이고 온전한 신도 아닐 겁니다. 적어도 온전한 신이라면,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신이라면 내면이나 외면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 마음이나 불성이 온전한 마음이고 온전한 불성이라면 내면, 외면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요. 다만 이것이 교육적 용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접인지사接引之詞’라는 말을 씁니다. 접인지사란 사람을 이끌어주기 위한 말이라는 겁니다. 사람을 이끌어줄 때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처럼 내면적이다 외면적이다 할 수 있지만, 실천하고 인식할 때는 내면이나 외면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재적 하느님이라고 할 때 그 ‘내재적 하느님’의 구체성은 과연 뭘까, 이건 더 확인되어야 할 사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에서 ‘내면적’이라는 말은 실천적인 체험으로 들어갈 때 자기 생각을 맑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도나 불성은 어디서 만나려고 애쓰면 더 못 만나고, 자기 생각을 맑게 할 때 저절로 만나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을 쉴 휴休자를 써서 ‘쉬어라’라고 하거나, 그칠 지止자를 써서 ‘그쳐라’라고 하지요. 곧 그치면 보이고 쉬면 보인다는 것입니다. 망상을 그치고 보는 것을 지관止觀이라고 합니다. 수녀님 강의 중에도 ‘벽관’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는 자기가 허망한 생각을 일으켜서 밖으로 향하는 모든 관심을 벽처럼 차단시키면, 곧 얽혀 있는 마음을 벽처럼 차단시켜서 생각을 가라앉히면 보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생각이 고요해지면 보인다는 겁니다. 따라서 불교에서 ‘내면’이라는 말은 그칠 지止자의 의미고 고요할 적寂자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적조寂照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고요하면(寂) 밝히 드러난다(照)는 뜻입니다. 그치면 보이고(止觀), 또 밖으로부터 여러 가지 번민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벽을 쳐서 막으면 보인다(壁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기에, 틱낫한 스님처럼 쓰는 것이 상당히 보편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들어가 보면 내면은 없다, 내면을 생각하면 그것 또한 ‘하나의 번뇌’라는 것이 제 견해인데, 최현민 수녀님께서는 내면의 의미를 어떤 개념으로 쓰셨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실존론에 관한 것인데요. 실존론은 행동이고 실천인데, 강의를 하다 보면 공부를 해야 되고, 공부를 하다보면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와 충동, 곧 뭘 알아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알아내고자 하면 존재론에 빠질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실천적인 성향을 지닌 분은 연구하고 학습하는 데 좀 소홀하게 되고, 공부하는 데 열성을 바치는 분은 실천하는 데 좀 소홀하게 됩니다. 그러면 실존론적인 것과 현실생활에서의 과정적 실천을 중시할 때, 학자로서 존재론적으로 알고 싶은 욕구와 공부하고 싶은 존재론적 관심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요? 쉽게 말해 학문을 하다보면 학문적 욕심이 생길 텐데. 그러다 보면 존재론적 호기심도 생기게 되면서 결국 실천적 노력은 소홀하게 될 텐데, 최현민 수녀님은 학문의 존재론적 관심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최현민_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대해 말하는데요. 종범 스님께서 ‘외재적 하느님’ 혹은 ‘내재적 하느님’으로 표현하신 것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그렇게 이해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곧 초월적 하느님을 외재적 하느님으로 보시면서 저의 신관이 불교를 통해 외재적 신관에서 내재적 신관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초월성은 하느님을 밖에서 찾는 것이고, 하느님의 내재성은 하느님을 안에서 찾는다는 안팎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재적 하느님이나 초월적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그런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초월과 내재라는 표현 역시 언어적 한계를 지닌 인간의 방편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초월성이 의미하는 바는 하느님께서 안팎이라는 분별성을 뛰어넘어 계심을 뜻합니다. 즉 하느님은 인간의 사유로써 감지될 수 없는 분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요. 하느님의 ‘유일성’이라고 할 때 그 ‘유일’의 의미 역시 하느님은 ‘한 분’이라는 숫자적 ‘하나’를 의미하기보다 삼라만상을 초월해 계신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요. 하느님을 창조주로 보는 그리스도교의 창조론 역시 이러한 하느님의 초월성에 근거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초월적 신관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내재적 신관 또한 중시해 왔어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통이 바로 그것이지요. 내재적 하느님이란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분별적 관점에서의 ‘안’을 의미한다기보다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 생각해요.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을 임마누엘Immanuel이라고 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머무시는 분’으로 보지요. 우리네 삶의 자리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바로 지금 너와 내가 호흡하는 이곳에 계신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요.
하느님의 내재성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강조해 왔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면면히 이어져온 하느님의 내재성에 대한 가르침을 불교를 통해 더 깊이 깨닫게 되었어요. 다시 말해 불교를 통해 그리스도교에 없었던 새로운 신관을 발견했다기보다 이미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전수되어온 하느님의 내재성이 지닌 의미를 불교를 통해 더 깊이 자각하게 된 겁니다.
또 종범 스님께서는 실존론적 관심을 갖고 살아갈 때 존재론에 대한 학문적 궁금증은 어떻게 해소하며 살아가는지 물으셨어요. 사실 저는 수도자가 되기 전에 생화학을 공부해 오다가 제 자신의 실존적인 문제를 접하게 되면서 수도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수도자가 되어서도 다시 학문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요. 한때는 수도자라는 제 자신의 정체성과 학문하는 것 사이에 상당한 갈등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제 실존의 근원적인 물음을 계속 지니고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곧 불교가 제가 품어온 근원적인 물음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처럼 저도 살아오면서 많은 선지식들을 만났고 그분들께 묻고 답을 찾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난 선지식 중에는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불자들을 비롯한 이웃 종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만난 분들에게서 배우고 깨달은 바를, 또 제가 만나는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살고자 하는 원의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제게 학문의 길은 그 자체가 저의 실존적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강좌를 통해서도 그동안 제가 배우고 생각하고 느껴온 것들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사실 지금보다 젊었을 때에는 존재론에 대한 궁금증도 컸습니다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에너지도 점점 줄어들고 해서 전보다 존재론 쪽에 마음이 덜 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실천과 학문의 길 안에 긴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저는 이것을 ‘건강한 긴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승혜_ 감사합니다. 서명원 신부께서는 따로 말씀하지 않고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견해를 말씀하시겠답니다. 그럼 바로 첫 번째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1: 최현민 수녀님은 20세기 후반에 종교 대화 이론을 제시한 종교 학자들이 중시해온, 정상이라는 ‘목표’보다도 삶의 여정, 곧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각 사람, 혹은 각 종교공동체가 택한 삶의 길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불교를 좋아해도 나는 불자일 수는 없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3월 강좌 때에 표명된 이런 정체성은 11월 강좌에서도 다시 확인되어 우리의 삶은 하느님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과정신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신의 인격성을 버리면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보편적이라고 간주되는 정상보다도 독특한 삶의 길, 곧 여정을 더 중시하고 그리스도교 신관의 인격성을 그리스도교의 특성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시각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승혜_ 아까 종범 스님께서는 “내가 아무리 불교를 좋아해도 자신이 불자일 수는 없다”는 최 수녀님의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답을 이미 해주셨기 때문에 다시 반복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다만 신의 인격성 문제, 신은 초월성을 가지면서도 인격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계속 중시하는 최 수녀님의 기본적인 시각과 삶의 여정이 목표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 말씀해 주시고, 그 다음에 서명원 신부님께서도 또 신부님의 시각에서 말씀을 보태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종범_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현민 수녀님처럼 그렇게 하셔야 된다고 봅니다.
김승혜_ 혹시 뭐 인격성에 대해서 더 얘기하실 말씀 없으실까요?
서종범_ 예, 없습니다.

서명원_ 저는 최현민 수녀님과 똑같이 말씀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적 차원에서 배타적이면서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제게는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 수녀님께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낌없이 하고 계심에 틀림없습니다. 종범 스님께서 그 사실을 이미 잘 지적해 주셨고요.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최현민 수녀님께서는 불교와 함께 살다시피 하시는데 이것을 배타적이면서 포괄적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하면서도 불교 없이는 못 살겠다는 점에서는 저도 수녀님과 입장이 같아요. 설령 이게 혹을 달고 사는 것이라고 해도 저는 그 혹 없이는 못 살아요. 종범 스님, 혹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해서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고요. 저는 오히려 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은 계속 불교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왜 그런지, 어떤 인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살기 시작했는지 말씀드리지도 못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전생이나 죄업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몰라요.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교와 함께 붙어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죄업일지 모르지만(웃음), 그리스도교인의 입장에서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또 저의 종교적인 입장을 더 명확하게 설명해드리기 위해서 제가 한국에 오게 된 외국인으로서의 체험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몇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의 예로 저의 모국어는 불어예요. 그런데 한국에서 불어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자문자답할 때나 혼자 있을 때 사용하구요. 가르치기 위해서는 서투른 한국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한문도 엄청나게 많이 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어도 많이 사용해야 하지요. 영어는 제1외국어이지, 저의 모국어가 아니에요. 따라서 모국어가 아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저는 인간으로서 저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궁금할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다른 예로 저는 여권이 두 개 있어요. 캐나다에서 20년 동안 살았고, 유럽에서 20년, 나머지 인생은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단순하게 법적으로 저는 캐나다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아니라면 뭐 프랑스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 외국인 등록증도 있어야 합니다. 그 외국인 등록증은 프랑스 사람으로서 프랑스 여권을 보여주면서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정의할 때 저는 그냥 캐나다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프랑스 사람이라고만 말씀드릴 수도 없고 한국 사람이라고만 말씀드리지도 못합니다.
이러한 저의 인생의 여정을 돌이켜 볼 때 제가 어느 지점에 있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면, 쉽게 제 자신을 규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규정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으로 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드리되, 이건 그냥 모국어가 불어라고 말씀드리는 것과 같아요. 고향이 캐나다이고 모국어는 불어라고 해서 제가 누군지 여러분께 밝혀드렸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저의 종교적인 뿌리는 가톨릭 모태신앙임에 틀림없지만, 저 자신을 단순하게 가톨릭 신자로 생각하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불교와 함께 살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교와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불교에 대한 배타성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불교를 저의 신앙 체계의 기준으로부터 해석하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존경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웃 종교를 본격적으로 만나는 우리는 단순하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개인적,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답변입니다.

김승혜_ 네. 아까 신부님과 함께 오면서 신부님께 뭐 느끼시는 게 있으신가요? 했더니, 자기도 그렇고 최 수녀님도 그렇고, 우리는 계속 불교와 대화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불교와의 대화를 빼놓고는 우리의 정체성을 말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혹시 지금 듣고 계신 여러분 중 여기에 대해 질문이 있으신 분 없으십니까? 예.

질문자 A: 예, 불교와 그리스도교 영성에 관심을 갖고 살아오면서 이런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요. 불교에서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일념불생一念不生한, 곧 모든 망념에서 벗어난 경지를 구경각究竟覺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용수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인도에서 유통되던 경전이었던 󰡔화엄경󰡕 ｢십지품｣에서는 제7지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구경무심究竟無心으로 구경각究竟覺하고, 그 이후의 8․9․10지는 보살지를 무제한적으로 확대하는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즉 ｢십지품｣은 무념무심無念無心이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무념무심의 경지가 되어 비로자나 법신불과의 파트너십이 최대한으로 될 수 있는 경지가 되어 거기서 완성에 이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불교에서 보살행은 보살법지菩薩法智로 이것은 구경무심보다 약간 하위 단계로 봅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는 선불교보다 화엄의 보살십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에도 무념무심이 모티브지만, 그게 종국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파트너십이 최대한 이루어지는 조건이 된다는 식의 해석이 많습니다. 만일 한국불교가 화엄불교 중심이었다면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와 세부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상당히 호흡이 잘 맞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불교가 선불교 중심이다 보니 궁극적인 경지를 무념무상의 경지로 볼 지, 󰡔화엄경󰡕의 보살십지로 볼 지에 대한 갈등이 있지 않나 싶은데, 이에 대해 종범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서종범_ 질문이 매우 전문적이고 구체적이십니다. 갈등은 전혀 없습니다. 선불교의 십우도는 󰡔화엄경󰡕 ｢십지품｣에서 영향을 받아 선불교의 개괄적인 범주를 도상화한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십우도와 󰡔화엄경󰡕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완전히 텅 빈 무심의 경계가 마지막이 아니고, 반본환원返本還源이라고 해서 자연으로 돌아간 상태,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을 만나러 출발한 것에서 십우도는 끝납니다. 또 󰡔화엄경󰡕에도 무생법인 전에 수순隨順이라고 해서, 따르고 순종하는 수순 과정을 거치면 그야말로 탄생한 것 하나하나가 독자성이 없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 아닌 무생無生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부동지不動地라고 하는데 여기서 자기 구제가 된 거지요. 그 다음에는 선혜지善慧地와 법운지法雲地가 있는데 그건 회향廻向이에요. 자기 구제된 그 여력을 다른 데로 베푸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십우도와 󰡔화엄경󰡕은 동일하다고 보고요. 그리고 번민이 사라진 상태에 들어가야 깨달음이지, 번민을 그대로 가진 상태로는 깨달은 경지에 못 가거든요. 그게 무심이에요. 그럼 깨닫고 난 선사가 뭘 했는가. 󰡔화엄경󰡕식으로, 그리고 십우도식으로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심은 신체적으로 고정불변한 마음이 아니라, 무심 후에 그 무심의 희열과 아름다운 법열을 다 베풀었다는 거예요. 따라서 유념불생有念不生의 무심을 최고정점으로 해서 무심을 지키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 같지만, 무심을 지킨다면 그건 이미 무심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도를 실행하는 면에서 볼 때 전혀 충돌이 없고, 자연스럽게 생활 속으로 모두 용해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김승혜_ 예,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두 번째 질문으로…….

서명원_ 저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불교를 선종 중심이라고 하셨지만 제 생각으로는 한국불교에서 화엄교학의 비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에게 있어 그의 선적인 입장은 화엄교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현대 한국불교를 선종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화엄교학을 엄청나게 중시하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수행자들도 많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았습니다. 성철 스님께서는 화엄 사상으로 말미암은 한국 선의 그러한 교학적인 경향을 불식하기 위해서 매우 극단적인 돈오돈수頓悟頓修 수증론修證論으로 나가셨지요. 그런데 엄밀하게 보면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사상까지도 사실상 한국 선종의 밑거름인 화엄교학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승혜_ 예, 그러면 두 번째 문제로 들어가겠습니다.

질문 2: 최현민 수녀님은 예수님의 자기 정체성 자각을 12살 때의 성전 체험, 요르단 강에서 받으신 세례 체험, 십자가 사건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체험하신 타볼산(변화산)의 변모 세 가지 면에서 찾았습니다. 12세 소년 예수의 체험은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한 것으로, 세례 때에 예수님이 경험한 성령 체험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한 깨달음의 체험과 유사한 돈오적인 완전한 깨침으로, 변모 체험은 자신을 온전히 비워서 무아가 된 자의 모습, 곧 공의 경지에 들어선 자의 모습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불교적 언어로 예수님의 정체성 자각을 설명한 이런 시도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체험에 대해 이러한 불교적 조명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불교 쪽에서는 어떻게 느끼십니까?

김승혜_ 먼저 서명원 신부님께서 대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명원_ 최 수녀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 번에 걸쳐서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것은 아마 제가 예전에 언급했던 내용을 참고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사실 그리스도께 네 번째 깨달음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그것까지 언급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체험에 적용시키되, 그 내용면에 있어 불교와 똑같지 않아요. 체험의 구조가 유사하다고 해서 내용이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셨을 때 하느님 아버님와의 관계를 발견하셨다는 것은 불교적인 표현 방법이 전혀 아닙니다.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이 열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셨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 불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까 그분들께서 상당히 헷갈렸어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모든 상相들을 벗어나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너는 그 이상한 상들을 벗어나기 위해서 선원에 가서 3년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살아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저에게 깨달음을 말하면서 왜 그렇게 망상妄想을 일으키느냐고 나무라기 시작했어요. 이렇듯이 깨달음의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양 종교가 아주 다릅니다. 또한  예수님의 세 번째 깨달음이라고 볼 수 있는  ‘거룩한 변모’ 때의 모습을 공의 경지에 들어선 자의 모습이라고 묘사하셨습니다. 영광스러운 변모를 볼 때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모세와 타볼산 꼭대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시다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체험을 통해서 당신께서 예루살렘에 가서 어떻게 구약을 완결하셔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셨을 뿐만 아니라 완결하시기 위한 힘도 얻으셨습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체험을 하신 후에 그 체험의 내용을 어떻게 실천하셔야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이 체험 뒤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길을 가기로 결단을 내리셨다고 봅니다. 이것을 최 수녀님께서 공의 경지에 들어선 자의 모습이라고 묘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얘기하면 상당한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나 두세 개의 연결고리가 빠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만 본다면 그리스도교를 불교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무無의 경지로 들어가셨다고 생각할 수 있되,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체험을 통한 것입니다. 그 체험은 불교의 무의 경지와 여러 모로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서종범_ 깨달음이라는 것은 언어와 사고가 아니에요. 이걸 혼동하면 안 됩니다. 언어와 사고는 어디까지나 언어이고 사고지요. 그래서 깨달음이 큰 불덩어리, 일단화一團火라는 말을 쓰는데, 하나의 덩어리로 된 불덩어리라면 생각은 파리와 같다는 겁니다. 파리가 다른 곳에는 다 앉을 수가 있어도 불덩어리 위에는 못 앉습니다. 앉으면 타 죽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깨달음이 어떤 거냐? 불교와 같으냐, 다르냐? 여기에는 답이 없어요. 다만 그 알고자 하는 생각을 돌이켜볼 때 거기에서 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답을 구한다든지, 언어로써 답을 구한다든지, 생각으로써 답을 찾는 것은 적절치 않은 방법이고요, 생각 자체로 돌아갔을 때 거기에 길이 있습니다. 그게 불교적인 방법입니다.

최현민_ 서명원 신부님 말씀대로 예수님의 깨달음을 불교에서 말하는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처님처럼 연기緣起를 깨달았던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압바Abba성’을 자각하셨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예수님의 생애에서 몇 차례 중요한 체험들이 있으나 이 모두는 압바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봅니다. 십자가상에서의 체험까지 포함해서요. 불교의 승가가 부처님의 깨달음인 ‘연기’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라면, 그리스도교 교회는 ‘압바 하느님’이라는 예수의 깨달음 위에 세워진 신앙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떠나선 성립될 수 없다고 봅니다.

김승혜_ 혹시 지금 주제에 대해서 더 나아가는 질문이 있으십니까?

질문자 B: 깨달음은 생각하는 것, 언어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또 생각 자체로 간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데카르트의 경우에는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고 했거든요. 물론 그 사람은 불교를 공부한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구요. 그런데 생각 자체로 가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깨달음은 구체적이지는 않겠지만요.

서종범_ 아뇨, 깨달음은 구체적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없어지는 거예요, 깨달음은 생각이 없어지는 겁니다.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자면요. 60년대 후반, 지금부터 40년 전쯤 됐는데, 66년인가, 제가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통도사에서 한문 불전을 공부했는데, 그때 󰡔선요禪要󰡕라는 책이 있어요. 최현민 수녀님도 그걸 말씀하시더라고요. 거기 보면 안심입명安身立命이라는 게 나와요. 안심安身은 몸을 편안히 한다는 건데, 몸을 편안히 한다는 건 󰡔맹자󰡕에서 인간의 수명이 길건 짧건, 장수하건 요절하건 상관없이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하는 게 입명立命이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감명을 받았지요. 안심입명이라. 아,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아들은 아들 노릇하면 되고,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하면 되고. 입명. 야, 이게 불교식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 그래서 당시 도인, 불교에서는 도인을 다른 말로 생불生佛이라고 해요, 살아 있는 부처로 존경받으시던 경봉 노스님께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오후 1시쯤 됐는데, 더울 때였어요, 뒷마루에 앉아 계시더라고요. 절을 하고 질문이 있어 왔다고 하니까, 뭐냐고 하시기에, 󰡔선요禪要󰡕에 안심입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안심입명이 뭡니까? 라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딱 말씀이, 안심입명이라고 묻는 고놈이 뭐냐?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이게 선禪입니다. 답이 거기에 있어요. 이걸 누구한테 물어서 해결하려면 천만년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배워서 해결하려고 해도 안 돼요.
그런데 그 말은 그 노스님이 안 가르쳐줘도 많이 들었거든요, 듣던 얘기예요. 그래서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고, 그 가르침에 불만이 굉장히 컸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니까, 부채를 가지고 이쪽 오른쪽을 확 치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생각하면 “십만팔천리다” 이러셔요. 십만팔천리가 먼 거리라는 얘기죠.
“예수님의 깨달음이 뭔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예수님의 깨달음은 십만팔천리가 아니라 삼십만육천리도 더 넘을 거예요. 그때는 노스님의 가르침이 중요한 줄 모르고 불만을 잔뜩 갖고 그냥 세월이 지나갔는데, 한 30년 지나서야 아차, 내가 그 가르침을 고기가 낚시 물듯이 물어서 걸려들었다면 그 많은 세월을 겪지 않고도 더 깊은 도의 세계에 들었을 텐데, 그때 그냥 스쳐간 것이 무척 억울하고 한탄스러웠습니다. 저는 이런 아주 뼈저린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로 영성을 생각하고 마음에 신비 체험을 하고 싶으면 그 생각을 돌아보는 방법이 가장 중요합니다. 밖에서 대답을 구하는 대신 알고자 하는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가, 묻고자 하는 욕구가 어디서 나오는가, 그 생각을 돌아볼 때 거기에 해답이 나오는 거지, 이걸 말이나 글로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은 마치 연못에 가서 달을 찾는 거와 똑같기 때문에 해결책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승혜_ 네,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세 번째 문제로 가겠습니다.

질문 3: 최현민 수녀님은 그리스도교와 불교 수행을 타력과 자력으로 나누는 것은 왜곡된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고 부정적으로 봅니다. 깨달음은 믿음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올바른 믿음을 중시하는 것은 선종과 정토종에서 다르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여기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에서 읽은 믿음(信)에 대한 정의가 생각납니다. “이치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믿고, 닦아서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믿고, 닦아서 그렇게 되었을 때 무궁무진한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믿음에 대한 이러한 다차원적인 해석을 바라보면서, 최현민 수녀님은 그리스도인의 믿음 역시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에 하느님이 드러나심을 믿고 그것을 내 삶의 척도로 삼고 살겠다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래서 깨침의 차원에까지 들어가야 올바른 그리스도교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수행에 있어 타력과 자력으로 구분하는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에 동의하십니까? 그리고 그리스도교에 못지않게 불교 전통에서도 믿음이 큰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믿음’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김승혜_ 이 질문은 제가 종범 스님께 여쭤보는 것입니다. 서명원 신부님께서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에 믿음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지 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종범 스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종범_ 자력이나 타력에 대해 불교에서도 이야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타력이란 없습니다. 완전한 타력은 없어요. 이런 비유를 많이 쓰는데요, 태양이 아무리 밝아도 내가 눈을 떠야 보인다. 그러면 밝은 빛을 보는 게 태양만의 힘이냐? 아니거든요. 자기 눈뜸의 힘이 있거든요. 그러면 눈만 뜨면 태양이 보이냐? 아니거든요. 그래서 자력적이거나 타력적이라는 표현은 교육적인 용어로는 쓸 수가 있어요. 이런 교육적인 용어를 불교에서는 방편方便이라고 합니다. 방편이란 접근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렇지만 실제로 자력과 타력을 구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자력인 동시에 타력이고, 타력인 동시에 자력이지요. 햇빛을 보는 게 햇빛의 힘도 되지만 눈의 힘도 되고, 눈의 힘도 되지만 햇빛의 힘도 되는 거지, 그걸 어떻게 일방적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에서도 믿음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제가 경봉 노스님의 가르침에 대해 큰 은혜를 얻지 못한 것은 그분의 가르침을 못 믿었기 때문에 그래요. 믿었으면 금방 해결이 됩니다. 아, 이 믿는 마음을 돌아보는 게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믿으면 바로 거기에 걸려들거든요. 안 믿으면 안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믿음은 처음이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종교는 믿음을 떠나서 존재하는 건 없다고 봅니다.
과학, 철학, 종교가 있는데, 과학은 ‘뭐냐, 왜 그렇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과학인 것 같아요. 그 원리를 찾아내는 건 과학 같고. 철학은 ‘무엇입니까? 존재가 뭐냐, 가치가 뭐냐?’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나 가치에 대한 물음이지요. ‘사는 게 뭐냐, 죽는 게 뭐냐’라고 묻는 것이 철학이라고 봅니다. 종교는 뭐냐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주소서’예요. 내가 오늘 한 모임에서 ‘주소서’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주소서’만 빼고 기도하라고요. 그러니까 ‘주소서’를 훨씬 덜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엔가 한 번 하기는 하더군요. 불교에는 ‘주소서’가 없느냐 하면 많아요. 전부가 발원發願, 뭐 원한다, 해 달라……. 그러니 ‘주소서’를 빼놓고 종교가 성립이 되느냐 이 말입니다. 뭘 해주십시오, 주세요, 주소서, 주십시오, 이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달라는 거지, 안 믿으면 달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주세요’는 종교고, ‘뭡니까’는 철학이고, ‘왜 그렇습니까’는 과학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종교학이나 불교학을 하면서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학문은 과학이거든요. 그래서 ‘주소서’ 하는 사람이 ‘왜 그렇습니까’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불교나 그리스도교나 똑같이 중요한 것이지, 중요하지 않으면 종교가 성립될 수 없다는 제 개인적인 견해까지 곁들여서 말씀드립니다.

서명원_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믿음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몇 년 전에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를 읽었습니다. 이것은 원효의 저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원효의 정신을 이어받은 원효의 제자들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완전히 새로운 불교관을 발견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를 알려면 󰡔유심안락도󰡕를 꼭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요. 이 경전에서 말하는 핵심은 ‘무조건적으로 믿으라’는 겁니다. 이 경전을 함께 강독한 학생들까지도 불경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유심안락도󰡕에서 주장하는 그 믿음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론적인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까지 말이죠. 믿어야 한다는 것을 더 깊이 터득하기 시작함으로써 상당한 도움을 얻었다는 겁니다. 종범 스님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역시 가장 타력적인 것이 가장 자력적인 것이듯이, 가장 자력적인 것도 가장 타력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김승혜_ 그러면 네 번째 질문으로 가겠습니다.

질문 4: 최현민 수녀님은 향심기도를 예로 들면서 집중(attention)과 지향(intention)이 불교와 그리스도교 수행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불교 수행은 옴 몸과 마음을 집중할 것을 가르치는 데 비해,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면서 활동하심에 동의한다는 지향이 중시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가 불교와 그리스도교 영성의 근본적 성격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보다도 더 근본적인 차이를 그리스도교에서 끝까지 가지고 있는 신과 인간의 불가역적 관계성에서 찾아야 할까요?

김승혜_ 2003년에 중앙승가대학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수행’이라는 주제로 씨튼연구원 10주년 세미나를 했었는데요, 그때 종범 스님께서 불교의 수행에는 신심 수행과 발심 수행, 그리고 무구행無垢行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혹시 발심 수행에서 집중(attention)이 중시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것을 포함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종범_ 불교의 수행이 집중이고 그리스도교의 수행이 지향이라는 비교는 동의가 안 됩니다. 그리스도교 수행을 지향이라고 보는 건 잘 모르겠는데요. 불교의 수행을 집중이라고 정의하는 데는 동의가 잘 안되거든요. 왜냐하면 불교에는 상좌부와 대중부가 있는데요, 상좌부를 소승불교라고 하고, 대중부를 대승불교라고 하지요. 상좌부 불교는 주로 동남아시아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남방불교라고 하고, 대승불교는 동북아시아에 있기 때문에 북방불교라고 하는데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라고 하면, 목적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지만 수행이 다르다는 겁니다. 남방불교의 수행은 집중 수행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이걸 선정 수행이라고 하는데,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지혜, 곧 반야 수행이라 합니다.
그래서 아까 󰡔화엄경󰡕 ｢십지품｣ 말씀도 했는데, ｢십지품｣이 바로 지지智地예요. 땅이라는 건 ‘지혜’를 비유한 겁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기본적으로 지혜가 중심이에요. 그러면 대승불교에서는 선정을 닦지 않는가 하면, 닦습니다. 그런데 소승불교의 선정과는 차이가 있다는 거지요. 소승불교의 선정은 깊은 선정에 들어가면 오감이 열리질 않습니다. 눈으로 뭐 보지도 않고요, 귀로 듣지도 않고, 코로도 느끼질 않아요. 그게 멸진정滅盡定이라는 것인데 이는 감각이 다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정에 들어 있는 동안에는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바람이 부는지 몰라요. 이게 소승의 선정이지요. 그런데 대승의 선정은 다 압니다. 이와 같이 ‘아는 선정’과 ‘모르는 선정’이 있는 건데요. ‘아는 선정’이란 보되 보는 대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선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妄念不起)을 선정이라고 하지요. 사람을 보되 사람을 좋아한다거나 싫어하는 애증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을 집착이라고 하거든요. 이런 애증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보는 게 대승 선정이에요. 듣되 애증을 일으키지 않고 듣는 게 대승 선정이고, 그게 바로 반야의 선정입니다. 그래서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게 중요하지요. 집중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할 정도로 머물러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대승불교에서는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의 수행을 집중 수행으로 보는 것은, 남방불교로 보면 딱 맞아요. 그러나 적어도 화엄교학으로 오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대승불교를 집중 수행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승혜_ 지향을 두는 것은 어떻습니까?
서종범_ 지향요?
김승혜_ 예, 아까 그 스님이 얘기하신 발심 수행으로…….

서종범_ 아, 발심 수행이 대승불교 수행인데요, 원력願力에 속하는 겁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에 가면 ‘무엇을 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다 증명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대승불교는 그리스도교와 일맥, 비교되는 점이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불교는 불교대로 쭉 실천하고,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대로 실천하면 되지, 같으냐 다르냐, 이런 동일성이나 차이점을 구분하는 건 학술적인 관심은 될지언정 실천적인 관심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서명원_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양 종교의 만남 그 자체가 ‘실천’이라고 봅니다. 학문적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지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면서 활동하심에 동의한다는 ‘지향’이 중시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성서의 한 가지 말씀만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이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면서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요한 16,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최현민 수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도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면서 활동하심에 동의한다는 생각까지도 버려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이나 다른 온갖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다면 주님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비가들이 말하는 부정의 길(via negativa)을 끝까지 걸으려면 전부 다 내놓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결국은 주님의 합일에까지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제가 불교를 접하면서 발견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막상 보니까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가르멜의 산길󰡕에서 가르치시는 영적 사상과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김승혜_ 지금 서명원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끝 부분을 잘 드러내주셨다고 봅니다. 부정신학으로 가게 되면 우리가 잘 아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도 그러셨고, 󰡔무지의 구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경우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지향’이 기도의 시작에는 분명히 있는데, 끝에 가게 되면 그것 역시 버리는 것이라고 할까요, 쉰다고 할까요, 가게 한다고 할까요. 아무튼 이 부분에서 선禪과 가장 잘 만나지 않나 싶습니다.

최현민_ 제가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불교 명상을 ‘지향과 깨어 있음(집중)’의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 것은 궁극적인 깨달음의 차원에서라기보다 수행의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두 분께서 언급하셨듯이 궁극적 차원에서는 그리스도교의 기도나 불교 수행에 있어 만남의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러나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불교 수행에서는 망상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데, 이를 위해 위빠사나 수행이나 간화선 수행 모두 ‘깨어 있음’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호흡에 깨어 있고, 화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깨어 있음으로써 신심일여의 상태에 머무르고자 합니다. 제가 불교 수행을 집중(attention)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 ‘깨어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겁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깨어 있음에는 집중만이 아니라 통찰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집중이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라면, 통찰은 바로 그 존재의 실상을 깨닫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교는 향심기도에서도 말하듯이 관상기도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지향’을 갖도록 가르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향’이란 기도하는 주체가 취해야 할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 동의하는 ‘지향’을 갖는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의 기도나 불교 명상은 주체자의 측면에서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고 봅니다. 물론 기도나 명상이 궁극적인 경지로 들어가면 주체자의 능동성은 ‘수동성’으로 나아가게 되고, 이 측면에서 양 종교의 기도와 명상에 접점이 있음을 오늘 함께 하신 세 분의 말씀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종범 스님께서 말씀하신 󰡔화엄경󰡕 십지 중 제 팔지八地 이상이면 무공용無功用이라는 경지나, 예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드린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기도는 수행자가 궁극적으로 취해야 할 수동적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승혜_ 예, 혹시 여러분 중에서 질문이 없으십니까?

질문자 C: 그러니까 저기, 요즘도 이제 불교인들의 모임에 가보면 끝에는 항상 사홍서원을 하고 마칩니다. 그런데 사홍서원의 내용을 보면 중생이 가없어도 다 건지겠다, 법문이 무량해도 다 배우겠다, 불도가 어렵지만 다 배우겠다는 것입니다. 이건 한마디로 무한한 서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는데요, 아까 그 선사가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는 그것을 베푼다고 하셨는데, 현실적으로 선어록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무한한 서원이라는 차원에서 그러는 게 아니라 무집착이 오히려 더 중요한, 무집착. 그리고 뭐랄까, 그 망상을 보면서도 끄달리지 않는 그것이지, ‘무한한 서원’으로 펼쳐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한한 서원, 사홍서원과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아무래도 보살도 쪽에 훨씬 더 이미지가 강하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교 교리에도 보면 하느님은 무한한 선善으로 표현되고, 무한한 선 대신에 유한한 선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신학대전󰡕에는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제가 드리는 질문은 아까 답변이 약간 뭐랄까, 현실적으로 선사들이 무한한 선에 대한 강력한 의미를 표명하는 것은 보기 어렵고 오히려 그렇게 했다가는 법집法執에 사로잡히는 경지가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집착을 깨주는 쪽으로 나아가지, 결코 그러지는 않는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화엄경󰡕에 나타난 보살도, 비로자나 법신불에 대한 묘사는 분명히 경전만 보면 인격성이 굉장히 강조되어 있고, 비로자나 법신불은 일체 중생이 공사상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방편적 지혜를 확장하는 쪽으로도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비로자나 법신불, 그리고 무량한 서원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종범_ 선사가 무념으로 하면 그 무념 자체가 원력願力과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화엄경󰡕에 보면 팔지八地 이상이 되면 무공용無功用이라고 하는데요, 공용功用이라는 게 공을 들인다, 작용한다는 것이거든요. 궁극적인 경지에 들면 공들여서 작용 안 해도 저절로 되는 거예요. 무공용이지요. 그런데 팔지 밑으로는 지공용智功用, 지혜로써 공을 들여야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지공용의 경지와 무공용의 경지가 있는데, 무공용이 진짭니다. 저절로 되는 거예요. 무공용과 지공용을 비유로 말씀드리면 육지에서는 두 발로 걸어야 가는데, 바다에 배를 띄우면 바람 따라 저절로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사가 보기에는 무심의 경지에서 자기 기쁨을 누리고 집착을 안 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절로 자기 집착이 해결됐기 때문에 집착이 해결된 에너지가 자비와 원력으로 나타나서, ‘한다’라는 생각도 없고 ‘한다’라는 목표도 제시하지 않지만 자나 깨나 무공용으로 사는 거지요. 일부러 노를 짓지 않아도 바람결에 의해 배가 바다 위에서 가듯이 그렇게 가는 것, 그게 바로 도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이나 선에서 말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보고 싶습니다.

김승혜_ 그러면 다섯 번째 질문으로 가겠습니다.

질문 5: 이번 대화 강좌 중에 최현민 수녀님은 틱낫한 스님을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둘 다 가장 깊게 이해하시는 분으로 평가했습니다. 종범 스님께서는 틱낫한 스님의 불교적 해석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화적 이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현민 수녀님께서 많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분 영성의 사회적 측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 각기의 수행과 종교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폭넓은 영성이 오늘날과 같이 종교 문화권 사이에 알력이 증폭되고 있는 시대에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김승혜_ 먼저 종범 스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그 다음에 서명원 신부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서종범_ 틱낫한 스님의 그리스도관에 대해서는 저 자신도 아주 긍정적으로 봐요. 그 깨달음의 차원에서 예수님을 이해했다는 것은 아주 깊은 통찰인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불자의 눈에 비친 예수를 단순히 예언자의 기능으로만 보지 않고 깨달음의 체험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고요. 옛날에 경봉 스님도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태초에 말이 있다’라는 요한복음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태초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없다는 거죠, 존재밖에 없다는 건데요. 그래서 “‘말’을 알면 된다. 예수도 말 속에 있다”라고요. 이건 불교적인 시각에서 보는 관점이죠. 그런데 종교의 조직이나 세력이나 문화적 전통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를 보지 않고 예수님을 깨침의 대상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발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틱낫한 스님의 그리스도관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그 다음 질문에 대해서도 말씀드릴까요?

김승혜_ 예, 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종범_ 또 틱낫한 스님의 사회적 기능을 매우 존경합니다. 스님께서는 ‘깨달음 운동의 승가 공동체’라는 말을 쓰시던데요. 이런 깨달음을 지향하는 모임이라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는 많은 모임이 있지만, 깨달음 모임이라는 건 잘 없거든요. 그래서 틱낫한 스님이 인도하는 모임이 깨달음을 가치관으로 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구요. 이는 단순히 모임 자체를 확대시켜 나가고 모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모임을 통해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정신적 평화를 갖게 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고, 사회적 의미도 대단히 커서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틱낫한 스님이 시도하는 방법이 굉장히 앞서간다고 봐요. 그래서 저 자신도 틱낫한 스님을 매우 존경하고 있습니다.

김승혜_ 감사합니다. 서명원 신부님?

서명원_ 이번에는 할 말이 조금 많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서양에서 불자들 중에 티벳의 달라이 라마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틱낫한 스님의 불교에 대해 말씀드리기에 앞서 몇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종범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깨달음이 발을 디딜 틈도 없는 경지라고 한다면 더 이상 깨달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며,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인 만큼 이웃 종교와의 대화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만남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양면성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깨달음을 언어화할 수 있다고 한다면 대화도 가능해지기 시작합니다. 도道야말로 중국어에서는 깨달음으로서 비언어적인 측면도 있고, 언어 자체로서의 측면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경지인 진여眞如가 정적인 것으로서 도저히 언어화할 수 없지만, 역동적인 것으로서 얼마든지 언어화할 수 있습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깨달음에 대한 각도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언어화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지요. 불교에서 흔히 부처님의 깨달음의 핵심을 언어로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라고 하거나 삼법인三法印 등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께서 언어화할 수 없는 깨달음을 통해서 당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발견하셨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의 논리를 밀고 나가면서 깨달음을 끝까지 언어화할 수 없다고 한다손 치더라도, 깨달음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소위 깨달은 자의 행위를 통해 깨달음의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대승불교에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난 다음에, 깨달은 바를 중생들에게 가르칠까 말까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가르치기로 결단 내리시고 나서, 50년 동안 입적하실 때까지 동북인도의 도처를 다니시면서 불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성령의 체험을 통해 아들이심을 발견하고 나서 40일 동안 광야 체험을 하시다가 공생활로 들어가셔서 참으로 헌신적인 생활을, 헌신적인 봉사를 하면서 사셨고 종말론적인 생활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적인 용어로 말씀드리자면 다할 수 있는 데까지 보살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깨닫고 난 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각각의 창시자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면, 깨달음의 언어화 문제를 떠나서 깨달음을 얻고 난 자로서의 행동을 보아야 깨달음의 진정성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참여’로 특징지어진다고 여겨지는 틱낫한 스님의 불교는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불교가 개신교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사회참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통계만 봐도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이나 병원시설 등의 사회사업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틱낫한 스님께서는 서양에서 지탄받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는 불자가 아니다, 더 이상 불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로부터 오염된 불교”라고까지 해요. 엥게이즈 부디즘Engaged Buddhism이라고도 하지요. 틱낫한 스님의 불교야말로 굉장히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 저와 친분이 있는 스님과 함께 어느 신문기자를 만나서 함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신문기자가 “한국불교가 사회참여에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 스님께서 약간 기막히게 들리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게 사회사업을 했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회사업을 하는 것과 깨달음의 길을 가르치는 것을 그런 식으로 분리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나 뵙고 그분한테서 들은 것인데, 불교가 그리스도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사회참여라고 하셨어요. 저는 지금 한국불교가 여기에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미래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두 종교가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한국불교에서는 그리스도교로부터 도전을 받아 더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좀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향해서 좀 더 깨달은 사회참여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서구 문명을 이해하고 사귀는 데 있어서 틱낫한 스님의 진리에 대한 대화적인 접근 방법(dialogical approach of truth)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불교는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위해 한국불교의 특징 중의 하나인 간화선을 국제화하려는 노력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 문화권 안으로 들어가거나 국내에서 국제선원을 지으려면, 서양 문화와 대화할 수 있는 길을 계속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적인 자세 없이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깨달음을 향해 선禪 수행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과정을 언어화하기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틱낫한 스님께서 사용하시는 진리에 대한 대화적인 접근 방법이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참다운 수행자야말로 언어의 길을 일탈할 줄을 알수록 언어의 길을 따라갈 줄도 아는 법입니다. 틱낫한 스님은 바로 이러한 이치의 본보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으세요. 거기다가 개종을 요구하지도 않으시지요. 그분의 대화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사회참여가 바로 불교가 21세기에 서양에서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양쪽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승혜_ 제가 서명원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종범 스님께 다시 두 가지 점을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첫째는 아까 경봉 스님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그걸 보고 아, 벌써 그때 그런 생각을 하셨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워낙 많이 글을 쓰셔서 알고 있었지만, 경봉 스님께서 그리스도교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거든요. 그래서 아까 얘기하신 ‘태초의 말씀’에 대해서 태초는 제가 알아들었는데, ‘말’에 대해서 경봉 스님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좀 더 부연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경봉 스님의 이해를 좀 더 알고 싶습니다. 만일 경봉 스님이나 틱낫한 스님의 그리스도교 이해라는 게 또 하나의 발견이 아닌가 하시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셨는데, 제가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리스도교가 불교와의 대화에서 뭔가를 배우고 나아가는 것처럼, 불교도 그리스도교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을 때 뭔가 불교 자체로서도 더 깊이 이해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게 있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을 한 가지 여쭤보고 싶고요.
또 한 가지는 사회참여를 하시는 틱낫한 스님을 보고 어떤 사람은 이걸 오염된 불교라고 한다는데, 아까 스님 자신도 틱낫한 스님의 사회참여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셨는데요, 역시 사회참여라는 게 앞으로의 불교가 그리스도교와의 대화에서 더 강화하고 배워나가는 점이라고 생각하시는지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서종범_ 경봉 스님께서 ‘말’에 대해 지적하신 부분이 그런 거예요. ‘말이 바로 도’라는 거지요. 그래서 말만 알면 바로 도를 아는 거다. ‘말과 도’가 같다고 본 겁니다. 도에는 시간이 없기에 태초라는 건 의미가 없고 ‘말’, 바로 그 말이 도라는 거죠. 틱낫한 스님도 같은 뜻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요. 역사적 차원과 궁극적 차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궁극적 차원은 역사가 초월되는 거거든요. 이것이 불교의 시간관이기도 해요. 그래서 겁과 찰나는 다른 게 아니고, 존재 이외에 시간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에 매여 살아가거든요. 그래서 존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말이 도이고 진리이고 존재라고 한 것이지요.
오늘은 시계에 있는 오늘도 아니고 달력에 있는 오늘도 아닌, 그냥 느끼는 오늘, 이게 바로 태초인 거죠. 지금 이 순간은 역사가 없는 순간이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몇 월 며칠이라고 계산할 때, 이것은 궁극적 차원하고는 상관없이 인간의 의식으로 계산하는 의식적 차원의 시간이에요. 그래서 ‘말’을 깨달으면 바로 그게 부처님이 깨달은 것과 같다는 겁니다. 서양에서 어떤 분이 경봉 스님을 찾아왔는데 그때 그걸 질문하신 거예요. “성경에 보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말’이 뭔지 아냐?” 이렇게 질문한 거예요. “말이 뭔지 아냐. 나한테 묻는 것이 뭔지 아냐” 이런 거거든요.
사회성의 문제에 있어 불교가 사회성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염려하는 겁니다. 불교라고 왜 사회참여를 소홀히 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사회참여를 하다보면 진정성이 약해지는데 그걸 세속화라고 하지요. 그래서 세속화를 염려하는 거지, 사회참여 기능을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이제 사회참여 하는 건 관계성인데, 관계성과 진정성, 관계를 많이 맺다 보면 진정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 진정성이 흐려지면 관계성도 세속화되어 본래 의미를 상실한다는 거죠. 불교에서는 진정성을 청정淸淨이라고 표현해요. 그래서 그 청정성이 오염될까를 염려하는 거지, 많은 관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이게 아주 양면적인 겁니다. 관계성이냐 진정성이냐. 중점을 어디다 두느냐 하는 게 문제죠. 관계성을 거부하는 집단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진정성이 흐려지면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관계성을 소극적으로 갖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거죠. 예를 들면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산에 있는 산토끼를 쫓아가다가 집에 있는 집토끼까지 잃었다.” 이게 진정성과 관계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이 또 하나의 정체성이고 전통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역점을 관계성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문화냐, 아니면 진정성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문화냐, 그래서 이것은 각자의 정체성이죠. 그래서 불교가 은둔적이고 소극적인 게 아니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현민_ 저는 강의 때 여러 차례 틱낫한 스님을 언급하면서 스님의 가르침에 대해 공감하는 바를 말씀드린 바 있어요. 스님께로부터 받은 깊은 인상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이해의 폭이 무척 넓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폭넓은 이해 때문에 서구에서 많은 분들이 스님을 찾아가서 배우고자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구요. 사회참여와 관련하여 종범 스님께서 관계성과 진정성에 대해 언급해 주셨어요. 불교는 관계성, 곧 사회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 세속화되는 것을 염려한다고요. 십우도의 제8도에서 공의 깨달음을 얻은 후에 제10도에 가서야 자비 실천을 말하고 있다는 점도 불교가 진정성 위에 자비 실천행을 말함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즉 선先진정성과 후後관계성이라는 거지요. 대승불교에서는 지혜와 자비가 불이적不二的 관계라고 말합니다만 사실 지혜가 우선시되어온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무엇보다 먼저 지혜를 증득해야 하기에 깨달음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先 지혜 증득, 후後 자비행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참된 자비행은 깨침 후에야 가능하다고 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그런 자비 실천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무엇보다도 사랑을 실천함을 강조해 오고 있습니다. 이를 ‘관상과 활동’의 관계로 표현한다면 관상은 불교적 표현을 빌리자면 깨달음을 지향하는 진정성에 해당되고, 활동은 사랑의 실천을 통한 관계성의 측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라는 두 자매의 이야기는 관상과 활동의 관계와 관련하여 회자되어왔습니다. 예수께서 두 자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예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리아는 관조적 삶을 대표하는 인물로, 마르타는 활동적 삶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아왔고  마르타보다는 마리아, 곧 활동보다 ‘관상’을 우위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위의 이야기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했는데요. 마르타는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떠날 줄 아는 활동가라는 겁니다. 곧 마리아처럼 세상을 떠난 관상가가 아니라,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마르타는 하느님의 선善에 매료되어 하느님을 떠나려 하지 않는 마리아로 하여금 하느님을 떠날 줄도 아는 더 높은 정신적 경지를 깨닫게 하려고 예수님께 청했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마르타를 관상과 대립되는 활동가로 보지 않고 관상과 활동의 대립적 관계를 뛰어넘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존재로 보는 엑카르트의 해석은 그리스도교 영성 안에 진정성과 관계성의 역동성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은 예수님을 모방함에 있어요.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 익히고 이를 통해 그분과 하나 됨에 있습니다. 저는 빈첸시오 아 바울로Vincent de Paul라는 한 성인에게서 그 모범을 봅니다. 그분은 158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600년 사제가 되었는데, 당시 수많은 전쟁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영적, 물질적 빈곤을 목격하고 그들에게 봉사할 방법들을 찾았습니다. 그분은 전교회 사제단과 사랑의 딸회, 사랑의 부인회 등을 창설해서 당시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분의 행적을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게 활동가였던 그의 삶과 그가 남긴 가르침 안에서 저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관통하는 영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예수를 통해 배운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곧 빈첸시오는 하느님 사랑의 육화적 영성을 몸으로 살아냄으로써 진정성과 관계성 간에 조화를 잘 이루어 갔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교는 깨달음이라는 표현보다는 ‘믿음’이나 신앙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지요. 그리스도교에서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의로우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느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기록한 책이라 할 수 있지요. 예수는 죽기까지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고,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믿었던 바로 그 하느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자신의 믿음으로 삼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함이 ‘진정성’이라면, 이웃 사랑은 ‘관계성’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 둘은 불이不二의 관계임을 예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 안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을 사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선진정성, 후관계성이 아니라 진정성과 관계성 간에 불이不二적 역동성을 지향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활동을 보면서 그 안에 진정성과 관계성의 긴장 관계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진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자비행을 병행할 수 있는 면을 보여주신 스님의 삶은 불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인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김승혜_ 감사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뭐 질문하실 분 안 계신가요? 예, 말씀해 주십시오.

질문자 D: 종범 스님과 서명원 신부님께 한 가지씩 질문 드리겠습니다. 제가 오늘 종합토론 때 어떤 질문을 할까 곰곰이 고민하다가, 우선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인이라면 자신에 대해서 고민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자아의식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영어로는 에고ego라고 하지요. 우리는 기억이나 경험 등 자의식을 갖고 있는데, 불교 쪽에서는 그것을 거짓 자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행위나 사고를 하면서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지 않습니까? 주체자인 나는 사실 언어로 접근하기가 상당히 어렵거든요. 나는 의식도 할 수 있고, 생각도 할 수 있고, 육체적으로 여러 행위를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나와 불성과의 관계가 어떤지요? 이것은 평소에 제가 굉장히 궁금했던 사안이에요.
그리고 서 신부님께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잖습니까, 저절로 태어났고. 살다보니 자의식도 갖고, 청․장년기를 거치면서 자기의 개념도 생기고 욕심도 자연스럽게 생기잖습니까. 그리고 살다보니 돈에 대한 욕심, 출세를 하고자 하는 욕심, 편하고자 하는 욕심도 생기는데, 왜 그리스도교에서는 이것을 죄로 말하는 건지요? 우리가 그런 욕심을 갖고자 해서 가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절로 가지게 된 건데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어릴 때는 부모님께서 보호하고 양육하는데, 성장하고 나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기본적인 욕망이 필요하지 않냐 하구요. 그런데 어째서 죄가 되는가 하구요. 그것에 대해서 그리스도교인은 항상 우리는 죄인이니까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고 구원을 빌어야 하는데, 어째서 죄가 될까 하는 부분을 여쭙고 싶습니다.

서종범_ 그 ‘나’라는 게 문제지요, 나에 대한 집착과 애착, 그걸 아집我執이라고 하거든요. 모든 고통은 나로부터 생기니까요. 번뇌의 근원은 ‘나’거든요. 부처님은 ‘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이게 무아 아닙니까. 그래서 깨달음은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것이지요. 그럼 누가 깨달았느냐, 자아가 존재하지 않다는 걸 누가 깨달았느냐. 그걸 불성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무아가 바로 불성이지요. 한국불교의 역사를 보면 무아에 대한 가르침보다 불성에 대한 가르침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여기에 한 물건이 있다”(爲衆曰有一物, 육조혜능의 말씀). 그래서 ‘한 물건’에 대해 말합니다. 그게 바로 불성이고, ‘참나’인 진아眞我이지요. 그러면 무아와 불성 간에 긴장 관계가 생겨요. 그래서 무아를 이야기하면 알겠는데, 불성을 말하면 나를 인정하는 것처럼 되는 거지요. 그래서 불성은 큰 나(大我)라고 합니다. 이 분기점이 바로 󰡔열반경󰡕인데요, 무아를 이야기하다가 불성을 말하는 것, 이게 여래장 사상입니다. 그럼 왜 무아를 이야기하다 불성을 말했겠습니까?
󰡔열반경󰡕 8권에 보면 여래의 성품에 대해서 나오는데요. 불성을 이야기하는 게 불교의 근본이었는데, 세속의 쾌락에 집착하니까 무아를 말할 때 교육적으로 설명했어요. 쾌락에 대한 탐닉을 끊기 위해서 무아를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비유로 󰡔열반경󰡕에서는 어머니가 아들한테 더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서 젖에다가 쓴 약을 발랐다, 그래서 젖이 안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좋은 것을 더 먹일 만한 시점이 오자 다시 약을 씻고 젖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젖에다 약을 바른 것은 무아이고, 약을 씻어내고 젖을 다시 주기 시작한 것은 ‘불성’이라고 설명했는데요, 한마디로 불성은 반야般若입니다. 그래서 자아라는 것은 생각이고 망념이고, 불성은 반야, 곧 지혜인 겁니다. 그럼 허망한 생각이나 번뇌, 곧 망념과 지혜의 차이가 뭔가. 이게 아주 중요한 핵심이에요. 깨달음이란 과정을 설명하면 번뇌에서 지혜로 변하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그게 불성이죠. 그래서 번뇌로 집착되는 자아는 허구이고 스스로 집착할 뿐인 거예요. 그러면 ‘어느 것이 번뇌고 어느 것이 지혜냐’, ‘어떤 것이 파도이고 어떤 것이 물이냐.’ 이게 아주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결론은 ‘깨달아라’ 이거예요.
번뇌와 지혜의 관계에 대해 신약성서에 아주 멋진 말이 있더라고요.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마르 14,36). 제가 볼 때 이 기도는 모든 기도문 중에 핵심인 것 같아요. 인간이 다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생각의 집착으로 밀고 나가는 데서 고통이 생기는 것이지요. 지혜로 돌아가면 고통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탐욕으로 해결하려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지혜로 돌아가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못할 게 없다. 그러니까 역시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란 바로 거기에 모든 해결점이 있다고 봅니다.

김승혜_ 감사합니다. 혹시 서명원 신부님?

서명원_ 간단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윤리적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엄청나게 가깝습니다. 크게 차이가 없어서 서로 코드가 맞는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 있어서 죄란 나 자신에게나 남에게 해가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던져야 하는 질문은 하필이면 왜 내가 죄를 짓느냐 하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그 이유는 집착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 때문이라고 하지요. 저 역시도 내가 원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 하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저의 경우에는 불교를 통해 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을 많이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간화선, 화두참구를 하다 보니까 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환언하자면, 번뇌 망상의 흐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번뇌 망상의 흐름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직시하다 보니까 억제된 것들이 저의 무의식에서 다 떠오르기 시작해요. 그리고 억제되어 있기 때문에 제 안의 상당한 힘이 소모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들을 직시하다가 보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단 말씀입니다. 왜 집착이 저한테 생기느냐 하는 질문이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요. 저도 종범 스님이 말씀하셨듯이 무지와 무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안에 있는 온갖 집착들을 놓아두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저의 욕심을 채우면서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사실은 스스로 생지옥을 만들어 생사윤회에 빠져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착들을 놓아두는 방법 중에 하나는 무자無字 화두나 다른 화두참구입니다.

김승혜_ 더 질문이 있으십니까?

질문자 E: 아까 이제 서 신부님께서 간화선을 한국불교에서 국제화시키려고 노력하신다고 들었는데…….

서명원_ 네 국제화, 그리고 사회화하려고 애를 많이 쓰려고 정책도 세웠습니다.

질문자 E: 간화선을 국제화시켜 서구 속으로 들어갈 때, 유신론적인 서구의 문화 풍토 속에서 과연 어떤 전망이 나올 것인가 하는 것을 불교와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느님과의 합일이라고 정의한다면, 불교에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깨달은 공의 상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공과 하느님을 욕심의 끊음, 애착의 끊음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할 수는 없을까요. 예를 들자면 그리스도교 전통 중에 십자가의 성 요한을 보면 하느님과의 합일은 완전한 나다nada, 곧 무無, 없음, 끊음이거든요. 완전한 절멸. 그리고 그 뒤에 많은 신비주의자들도 끊음으로 표현했고, 공의 상태도 결국 핵심은 애욕과 애착을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닙니까? 즉 수행 방법에서는 다르게 보이지만 탐욕을 끊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이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명원_ 이것은 한 시간 동안 토론해도 부족한 주제이지만 시간이 다 지났으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사는 것은 아집과 아상我相을 완전히 벗어나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왜 깨달은 인물로서 그리스도교에서 인정을 받으시냐 하면, 아집과 아상을 완전히 벗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하느님이신 아버지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서 살다시피 하신 것으로 해석합니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진여眞如와 하나가 된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개별적 에고가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완전히 바꿔지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완전히 그리스도화 된다면 나의 아집이나 아상은 사라집니다. 여기저기에 걸리거나 사로잡혀서 사는 아我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소위 주님과의 완전한 합일의 경지인 것이지요. 저는 한국에서 그리스도인을 위한 간화선과 결제結制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화두로서 무문관無門關의 무자無字 대신 성서의 첫 번째 말씀인 ‘한 처음’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도다”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하나의 화두가 되는 거지요. 그 다음에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진흙으로 빚어내시되 입김을 코로 불어넣으셨도다.” 이것이 두 번째 화두입니다. 이렇듯 신약성경이나 구약성경은 화두 투성이에요. 아까 종범 스님께서 ‘말씀’에 대해 아주 정확히 언급해 주셨어요. 바로 말씀인 그 도道를 갖고 만들 수 있는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