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교육학연구 제28권. pp.161-191
서울: 한국종교교육학회, 2008. 12
생태위기 극복의 동반자로서의 불교와 그리스도교
최 현 민
서강대 대우교수
<요 약>
연기사상에 기초한 불교의 인간이해와 불성사상을 통한 불교의 자연이해는 이원론과 인간중심적 사유를 극복할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연기사상은 지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구체적으로 불교전통 안에서 동체대비사상(同體大悲思想)을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삼라만상의 존재가 하나의 관계망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적 존재론에 입각한 동체대비사상은 생태위기의 해결을 위한 지혜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불교의 연기사상과 동체대비사상은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서구사상계가 지닌 이원론적 사고와 인간중심적 사유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사상은 환경윤리로서 자리매김하기에 몇 가지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사회적 실천, 초도덕성, 평등주의, 책임성과 관련된 윤리적 주체문제가 그것이다. 불교가 지닌 이러한 한계점 중 윤리의 주체문제의 대안으로 그리스도교의 ‘청지기 윤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청되는 세계윤리는 하나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같은 전체주의적 통일성의 이념이 아니라, 상이한 세계종교들의 존재와 문화－전통적 다양성 위에 기반을 둔 세계적 구속성을 가진 가치와 이상이다. 불교와 그리스도교, 두 종교 모두 세계도덕으로서의 혜안과 함께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상호보완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현대의 생태위기 문제를 풀어가야 할 책임있는 동반자로서 상호대화를 통해 세계도덕적 혜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핵심 주제어 : 인간중심주의, 생태중심주의, 불교의 緣起와 同體大悲 思想, 그리스도교의 청지기윤리, 종교간 대화를 통한 세계윤리.
머리말
생태위기 문제는 현대사회 안에서 종교, 철학, 사회학, 경제학, 과학 등 모든 분야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환경운동가들뿐 아니라 철학자나 과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확산되어가는 것은 모든 분야가 이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분야에서 생태위기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미 생태위기의 심각함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방안과 실천이 쉽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그 이유 중 하나로 자기중심적인 인간 본성을 들 수 있다. 자기중심적 본성을 지닌 인간들 간에 가치관이 상충될 때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경제발전을 지향하는 이들과 파괴되어가는 환경을 보존하려는 이들 간의 상반된 가치관의 충돌이 그것이다. 경제발전을 지향하는 이들은 환경단체들이 각종 개발사업에 발목을 잡고 있음으로 경제행위에 제약을 받아왔다고 비판한다. 한편 환경보존론자들은 경제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들을 억누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자연 생태계는 경제성장을 위한 자원공급과 이용대상으로서의 역할만을 강요받아 왔고, 그러다보니 생태계의 순환원리는 깨어지고 무원칙적인 난개발로 인해 각종 환경문제가 쏟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환경론자들은 자연생태계를 경제행위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현대사회구조로는 인류와 지구생태계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환경보존과 경제발전이 상충되는 갈등적 상황 속에서 1972년 스웨덴의 스톡홀롬에서 개최된 유엔 인간환경회의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 의미는 “자원에 대한 적절한 관리와 더불어 환경개선을 위해 각 국가들은 그들의 경제개발 계획이 그들 국민들의 이익을 위한 환경개선과 보호의 필요에 상반되는 경제개발이 되도록 채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미래세대가 그들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속가능한 발전은 자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경제, 사회, 환경 부문의 균형되고 조화로운 발전을 모색하자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경제발전을 모색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이론이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나라들이 지속가능한 경제개발 계획을 실천하고자 시도해 왔지만 실제로 실현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은 지구적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표현하기는 쉬우나, 현실적으로 지역적 차원에 맞추어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보존과 경제개발의 통합’을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지려면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자연을 대하는 인식적 태도의 전환이다. 인식의 전환없이는 가치관의 전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뎀보프스키(Hermann Dembowski, 1928－)는 생태위기를 ‘자연에 대한 인식의 위기’로 규정한 바 있다.1) 또한 베어드 캘리콧(J. Baird Callicott)도 우리의 사고를 바꾸지 않고는 결코 생태학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2) 이런 점에서 생태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상학적 차원을 넘어서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자연에 대한 인식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종래의 자연이해에 대한 성찰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의미한다. 생태위기 문제의 근저에는 인간중심적 자연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먼저 인간중심적 자연이해가 태생된 그 배경과 한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Ⅰ. 인간중심적 자연이해
1. 생태위기의 근본원인으로서의 유대 그리스도교 전통
흔히 우리는 자연을 대상화된 사물이나 객체로 여긴다. 즉 이는 주체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이 중심이 되어 자연을 객체적 대상으로 바라봄을 의미한다. 환경보존론자들은 이러한 주객이원론적 관점에서의 자연이해가 생태파괴의 주요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객체로서의 자연이해는 이원론적 사유구조 안에서 자연을 주체인 인간과 대립시킨 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도구로서 봐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기복지를 위해 자연을 이용할 대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인간중심적 관점에서는 자연을 보존한다는 것 역시 인간복지를 위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린 화이트(Lynn Townsend White, Jr., 1907-1987)는 1967년에 사이언스를 통해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뿌리(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현대 생태위기의 역사적 근원은 유대교－그리스도교적인 인간중심적 자연관과 깊은 연관성이 있으며,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오만으로부터 오늘날의 환경문제가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3) 즉 유대－그리스도교적 전통은 ‘자연은 인간의 사용목적 외에 다른 어떤 존재이유도 없다’는 극단적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자연착취로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자연을 대규모로 그리고 급속도로 파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과학과 기술의 발달 역시 서양의 진보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 진보사상은 유대교－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토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화이트는 유대 그리스도교 이전에는 자연을 성스럽게 여겨왔으며, 사람들에게 반생태적 경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화이트와 의견을 같이 하는 내쉬(R. F. Nash)는 창세기 1, 26-28이 환경위기의 뿌리가 되었다고 본다.4) 그는 창세기 1. 26-28에 나오는 히브리 동사인 다스리다(radah)와 정복하다(kabash)의 의미가 그리스도인에게 우월적 구절로 해석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제임스 내쉬(J. A. Nash)는 화이트가 창세기에 나오는 신의 이미지(imago Dei)와 지배(dominance)의 개념을 오해했다고 본다.5) 그는 다른 구약성경 안에서 신의 이미지와 우월성 개념을 해석하면서 이는 지배의 의미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이 땅은 신에 속하고 신의 의지에 따라 경작하고 보호하도록(창2.15)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주어진 권한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도록 인가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임무와 책임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글래컨(C.J. Glacken)도 구약의 콘텍스트에서 볼 때 인간은 피조물에 대한 청지기이지 약탈자(plunderer)가 아니며 이런 점에서 인간의 우월성은 피조물에 대한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6) 이는 성경의 콘텍스트 안에서 지배의 의미는 인간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청지기의 책임이라고 해석한 자코와스카(Sophie Jakowska),7)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우월성은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진정한 우월성은 자기 희생의 사랑을 통해 드러난다고 본 데비드 퍼구슨(David A. S. Fergusson)의 견해와도 일맥상통한다.8)
이상의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유대 그리스도교를 생태위기의 원인으로 본 것은 성서에 대한 왜곡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패스모어는 유대교는 환경파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화이트의 구약성경 해석을 비판한다.9) 대신 그는 그리스철학과 이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교에서 생태위기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2. 생태위기의 근본원인으로서의 그리스철학－그리스도교 전통
주요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신플라톤학자(Neoplatonist)인 플로티누스(Plotinus)의 주요관심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과 이성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은 무상하고 변화하는 자연의 객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자연을 악이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자연은 인류의 필요에 응하기 위해 창조된 것으로 간주해 왔다. 이런 점에서 자연은 비인간적 창조물의 가치로서 도구적인 가치를 지녔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공리주의(실용주의)적 견해를 지닌 그리스철학은 서구세계에 인간중심적 자연관을 가져온 것이다.
특히 근대의 데카르트에 와서 자연과 인간을 이원론적으로 보는 실재론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데카르트는 정신적 인간(res cogitu)과 연장적 물질(res extensa)이라는 이원론적 사유 안에서 자연을 정신적인 특성이 없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규정했고, 단순히 반복운동만 하는 ‘기계’와 같다고 보았다.10) 이러한 인간중심적이며 기계론적 자연이해가 바로 근대 과학문명의 철학적 근간이 되어온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을 자신들의 문명을 위하여 마음대로 이용함으로써 자연을 파괴해 왔고, 생태위기를 초래함으로써 인간 자신의 삶마저 위협받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패스모어는 그리스 철학이 지닌 이원론적 사유가 생태파괴를 가져온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패스모어는 그리스 철학과 함께 그리스도교를 그 요인의 하나로 들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체 교의를 표현하는 과정 안에서 그리스 철학을 도입함으로써 그리스 철학적 사유를 그 자체 내에 육성하고 영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그로브(E. C. Hargrove)는 종교는 철학으로부터 많은 사고를 빌려왔고 이 과정에서 종교의 교의적 변질을 가져온 결콰를 낳았다고 주장한다.11) 이런 점에서 그는 그리스도교도 그리스 철학의 자연관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생태위기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서구 그리스도교는 그리스 철학의 자연관을 극대적 사유를 육성하고 영속시킨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자연의 복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직 그들의 영혼 구원에만 관심을 집중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스철학은 그리스도교 내에 영육이원론적 전통이 태생하게 된 요인이 되었고, 영지주의와 같이 이단이 생겨나게 된 요인이 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영육이원론을 주장함으로써 영적인 것은 중시하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지닌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거부해왔지만, 이런 운동 하에서 반영된 이원론은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다시 표면화되었다.12)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13세기 프랑스의 카타리파(알비파) 사상이다. 론강 서쪽 남프랑스에 많았던 카타리파는 마니교의 교리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따라서 그들은 이 세상, 물질계 자체가 ‘악’이기 때문에 세상을 창조한 신은 선신이 아니라 악신이라고 주장했고, 인간은 이 악한 세계에 ‘선한 영혼’과 ‘악한 육체’를 가진 이원론적인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이 이 세계를 벗어나 ‘선신’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은 육체를 부정하고 영혼을 맑게 하는 고행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고, 이 물질계를 벗어나 선신이 지배하는 비물질계, 천국으로 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왔다. 이와 같이 카타리파는 육체적 삶을 경멸하고 영혼에 집착함으로써 영지주의적 관점, 곧 영육 간의 영지적 분리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그 외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안에도 영육이원론적인 애매함이 있음을 볼 수 있다.13)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몸은 본질적인 악은 아니지만 영혼과 비교해서 이차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영육이원론적 잔재를 남겼다. 이와 같이 영혼만을 중시해온 영육이원론적 사유는 육체와 더불어 자연의 가치도 도구적으로 전락시키는 요인이 되어온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종래 생태파괴의 원인이 자연을 객체로 보는 인간중심주의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화이트는 생태파괴 원인의 근원적 뿌리를 유대 그리스도교에, 패스모어는 그리스철학과 그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교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 생태문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생태위기는 하나의 원인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
3. 생태위기의 다른 원인들
많은 학자들은 화이트와 패스모어의 환경파괴 원인이론이 생태위기와 관련하여 복잡한 역사적 실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화이트와 패스모어가 주장하는 것처럼 생태위기의 원인을 하나의 분리된 근원으로 보는 것을 비판하고, 그 원인에는 복합적이고 다요소적인 측면이 있음을 지적한다.14)
노스코트(M. Northcott)는 생태위기의 뿌리는 농업혁명 시장경제 과학 기술 진보와 관련된 사회진보와 변화에 있다고 본다. 한편 에르리히(Ehrlich)는 환경파괴의 주요인은 짧은 시간 내에 인구가 2배가 급증한 과잉인구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구성장으로 인한 더 많은 식품생산의 필요는 더 많은 기술산업 설비를 요구하고, 또한 식품을 생산 보존하고 포장하여 수송하는 과정에서 자연 유기체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데니스 도넬라 미도우(Denis and Donella Meadows)는 “성장의 한계(The Limits of Growth)”에서 “만일 현세계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인구가 증가하고 산업생산, 공해식품생산, 자원고갈이 지속된다면 전지구적 한계는 몇 십년 내에 온다”고 경고한 바 있다.15) 드 타비니어(J. De Tavernier)도 생태위기가 산업혁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16) 즉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혁신 곧 기계화, 자동화, 대량생산, 빠른 수송은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소가 된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환경파괴의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구폭발, 기술 경제의 영향, 자본주의적 이기주의적 경향은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사회는 이 복합적인 요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태위기의 문제가 야기되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화이트와 패스모어의 가설을 통해 유대 그리스도교 그리고 그리스철학이 생태파괴의 근원적 원인이라는 측면을 고찰했으며 다른 한편, 생태위기의 원인이 보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져 있다는 측면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생태위기를 하나의 근원에서 보든지 혹은 복합적 요인으로 보든지 간에 모든 생태위기의 요인들의 저변에는 인간중심적 사유가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인간과 자연을 주객으로 이원화시켜 보는 주객이원론적 자연이해 다시 말해 인간이 주체가 되어 자연을 도구적인 가치로만 바라보는 데에 그 근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복지를 위해 자연을 도구적으로 이용해온 인간중심적 측면에서의 자연이해가 결국 심각한 생태파괴의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 생태중심주의적 자연이해이다.
Ⅱ. 생태중심주의적 자연이해
1. 생태중심주의적 자연이해의 배경
서구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인간중심주의는 자연을 인간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서 간주함으로써 자연보호 역시 인간이익을 위한 측면에서 행하고자 한다. 생태중심주의론은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한다. 생태중심론자들은 자연을 도구적 관점에서 보는 것을 거부하고 자연의 내재적 가치에 주목한다. 자연의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분명하게 인식한 대표적 인물로 알프레드 레오폴드(A. Leopold)를 들 수 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청지기(stewardship)의 태도를 지닌 새로운 페러다임의 전환을 우리에게 촉구한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생명의 평등을 근거로 해서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옳으며, 그렇지 않은 것은 그르다”…대지윤리는 공동체의 범주를 토양 물 식물 동물에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대지윤리는 인간의 역할을 대지공동체의 정복자로부터 대지의 일원이고 시민으로 변화시킨다”.17) 이와 같이 대지의 윤리(land ethic)를 정식화한 레오폴드의 주장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것이어서 사회적인 수용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면서 그는 심층생태론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되었으며 그의 생태사상은 그 후 네스(A. Naess)의 심층생태론을 통해 하나의 생태철학(Biosophy T)으로 정착되어 갔다. 팔머(Clare Palmer)는 심층생태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심층생태학이라는 개념은 주로 네스와 드볼(B. Devall), 세션즈(G. Sessions)의 저술들에서 전개되고 있는 생태학적 접근을 가리킨다. 네스는 1973년의 짧은 논문18)에서 피상적 생태론과 심층적이고, 장기적인 생태론 운동을 대비시킨다. 전자는 오염과 자원고갈에 대한 투쟁으로 특징지워지며, 선진국 국민의 건강과 풍요에 중요한 목적을 둔다. 후자는 오염과 자원고갈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며, 이를 넘어서 지배적인 사회적 패러다임에 속하지 않는 원리들을 주장한다”.19)
네스의 심층생태학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존재자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고립시키면 그것은 파괴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와 같이 심층생태론의 핵심적 통찰은 전체론적 관점이며 이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연관성(interconnectedness)에 대한 통찰을 의미한다. 베어드 캘리콧(Baird Callicott)은 “개체적 접근은 환경윤리에 적합한 윤리를 위한 기초를 제공할 수 없다. 환경윤리는 보다 전체론적 접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0) 또한 그는 “자연의 내재적 가치를 간과한다면, 환경윤리는 다만 특수한 인간윤리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비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와 같이 자연의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중시하는 심층생태론의 가치론은 네스와 세션즈의 강령 중 첫 번째 원리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지구에 사는 인간과 인간 아닌 생명체의 번영은 내재적(intrinsic) 가치를 가진다. 비인간적 생명체의 가치는 이 생명체가 인간의 좁은 목적에 부응할 수도 있는 유용성과 무관하다”.21)
네스는 자신의 심층생태론을 다음 두 가지 규범으로 발전시킨다. 첫 번째 규범은 자아실현이며, 두 번째는 생명의 평등(biocentric equality)이다. 그가 말한 자아실현의 원리는 자신의 개별적 구원을 추구하는 고립된 존재로서의 자아를 넘어선다. 네스는 진정한 자아실현을 위해서 우리는 다른 인간들뿐만 아니라 비인간 세계의 다른 종들,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우리와 동일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자아실현의 목적은 자연과의 자기동일성을 완전히 깨닫는데 있다고 네스는 말한다.
그는 ‘무엇 때문에?’라는 목적론적 물음은 인간중심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모든 존재들을 수량화하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원으로 인식하며, 어떤 것이 무엇에 유익하다는 한에서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바로 인간중심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22) 이처럼 심층생태학은 우리의 목적론적이고 소비적인 사회의 기본적 원칙에 도전할 뿐 아니라 우리의 자기중심적 자아의 개념을 타파한다. 이는 우리에게 인간과 비인간 간의 비이원성을 극복케 함으로써 우리가 전체 생태계와 동일시됨을 자각케 하는 것이다. 네스가 말한 자아실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독립된 자아가 자연과 하나가 됨으로써 자아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큰 자아(Self)’를 자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별적으로 각 인간은 개별적 존재라기보다 ‘큰 자아 속의 자아(self in Self)’라는 것이다. 네스는 이를 인간의 좁은 자아실현과 달리 생태계 전체의 일부로서 우리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생태적 자아실현은 대지공동체의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큰 자아를 자각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자아실현은 둘째원칙인 생태중심 평등주의와 연관성을 지닌다.
생태중심 평등주의는 모든 창조물들이 동등한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과 다른 종 사이에는 존재론적 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층생태론에서는 생명권(生命圈)의 모든 존재는 보다 큰 자아실현의 범위 안에서 자아실현의 개별적 형태에 이를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생태계의 모든 존재가 상호연관된 전체의 부분으로서 동등한 본질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23) 여기서 우리는 심층생태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러한 통찰들은 과연 어떤 윤리적 함의를 가지는가? 심층생태학이 말하듯이 자아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면 누가 이 환경파괴의 책임을 질 것인가?
마이어－아비히(Meyer-Abich)는 책임이란 인간에게만 통용되는 개념이며, 자연의 모든 종들 간에 상호적인 책임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24) 심층생태론에서 말하는 상호성(reciprocity)이란 책임의식이라기보다 어떤 것이 다른 것들을 위해－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그들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오늘날의 환경위기는 생태위기 문제를 책임지고 이를 해결해 나갈 주체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심층생태론은 인간중심주의가 지닌 이원론을 극복하지만 책임의식을 지닌 주체성의 문제라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2. 심층생태론이 지닌 한계
심층생태론은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수용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네스 역시 인간을 자연과 밀접히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은 걸어가기 어려운 능선과 같다고 말하면서 그 어려움을 고백하고 있다.25) 그는 이 능선의 왼쪽에는 유기적이고 신비적인 견해의 바다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원자적 개체주의의 심연(深淵)이 있고, 비록 개체적 자아를 현재에도, 미래에도 고립시킬 수는 없지만 잠재성 실현의 어떤 수준에서도 개체적 자아는 바다의 물방울처럼 그렇게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네스의 고백은 심층생태론의 중요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심층생태론은 전체론적 관점을 강조해 옴으로써 종전의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 탈중심주의로 전향해왔다. 인간중심주의, 동물중심주의, 생명중심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중심주의는 그 중심축이 다를 뿐,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사유 안에 이원론적 사유구조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중심주의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동물이 중심이 될 때는 동물과 자연(식물포함)이, 무기물(자연)이 생명중심이 될 때는 생명체와 비생명체가 상호대립의 대상이 된다. 이런 점에서 그 중심축에 따라 대립적 대상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중심주의는 유사한 대립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지어 볼 때 전체론을 지향하는 심층생태론은 이러한 이원론적 사유를 극복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체론적 관점을 지향하게 될 때 인간은 단지 자연의 일부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다를 바 없이 그저 자연을 구성하는 한 개체에 불과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해석은 자연보존을 해야 할 주체의 문제, 즉 책임을 지닌 주체의 문제가 야기된다.
또한 심층생태론의 인간이해는 그 안에 내재해 있는 평등주의 문제와도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심층생태론자들은 다른 생명체의 이해관계를 인간의 이해관계와 동등하게 고려하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는 주장을 부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명평등사상에 근거한다면, 인간의 이해관심과 비인간의 이해관심이 상충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시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필요들(vital needs)에 따른 명확한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생태론자들과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점과 관련하여 심층생태론의 평등사상에 대해서 비판해 왔다. 이들은 심층생태론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를 놓치고 있다고 본다. 즉 심층생태론은 지배적 세계관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환경위기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사람들이 인간중심적인 지배적 세계관을 신봉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환경위기의 보다 중요한 원인을 오늘날의 사회적, 경제적,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사회생태론자들은 사회, 경제적 엘리트의 지배와 물질적 소비문화를 환경파괴의 중요한 원인으로 보며, 에코페미니스트들은 환경을 지배하는 원인들과 여성에 대한 억압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사회생태론자들은 심층생태학이 자연과 사회의 연관관계를 간과했다고 주장한다.
“심층생태학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개념을 우리 사회구조와 태도에 반영해야 함을 깨닫지 못한다. 생태위기 문제는 인간이나 인간중심의 문제라기보다 특수한 사회경제체계의 문제이다. 우리는 근본적인 사회문제의 해결없이는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심층생태론자들은 심층생태학은 특별사회 그룹의 고통을 그들이 겪는 비정의로움과 억압에 대해서 무시해 왔다”.26)
또한 에코페미니스트에 의하면 심층생태학은 자연과 여성과의 관계를 깨닫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심층생태학은 역사 안에서 여자와 자연은 비슷하게 무시되어 다루어져 왔음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환경문제는 인간중심의 문제라기보다－남성이 여성과 자연을 이용하도록 허락해온－남성중심의 문제이다. 따라서 성적 차별문제의 해결없이는 자연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생태학의 전체론적 관점은 개인의 생활의 실재와 가치를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생태중심적 자연이해가 지닌 한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외에도 심층생태론은 네스의 생태철학이 말해주듯이 윤리적 실천적 측면보다 형이상학적이고 이론적인 측면이 강하다. 한편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환경윤리는 보다 강한 실천력을 필요로 한다. 철학적인 측면이 짙은 심층생태론은 이런 실천력이 부족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막스 욀슐래거(Marx Oelschlaeger)는 환경철학은 학문적 전문가들에게서 나온 너무 기술적인 경향이 있음을 비판한 바 있다. “전문적인 환경윤리이론으로는 현대사회 안에 널리 퍼져가는 공리적 개인주의(utilitarian individualism)나, 정치 경제 기구 안에서 제도화된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는 힘들다.”27)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규명해줄 대안을 다른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앞서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중심적이고 이원론적 사유를 지녔다는 점에서 생태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화이트의 비판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생태계 위기의 뿌리가 종교에 있다고 본 화이트는 “그 치료 역시 본질적으로는 종교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막스 욀슐래거(Marx Oelschlaeger)도 근대사회가 지배적인 근대적 세계관을 넘어서서 지구의 모든 생명의 거룩함에 대한 감각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종교와 교회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28) 이러한 주장은 ‘종교야말로 교육, 기업, 정부와 함께 세계 변화의 중요한 사회적 원동력 중의 하나’라고 본 문화사학자 토머스 베리(Thomas Berry)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29) 또한 안나 피터슨도 “어떻게 윤리적 실천이 가능한지에 대해 우리는 종교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종교윤리는 다른 세속윤리보다 훨씬 살아 있는 윤리이다”30)라고 말하면서 종교 안에는 살아 있는 윤리가 되는 데 필요한 잠재적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왜 종교적 윤리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한스큉은 종교적 차원을 배제하는 시대분석은 힘을 갖지 못함을 지적한다.31) 세계의 주요종교들이 제시하는 윤리적 규범들은 역사적으로 매우 역동적인 사회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그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적 규범을 통하여 실천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한스 큉은 비종교인들도 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윤리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내재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종교 이외에는 윤리적 요구에 대한 무조건성(Unbedingtheit)과 보편성(Universalitat)의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종교의 도덕적 기능을 강조한다. 왜 도덕적 요구가 정언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종교만이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스 큉은 인간 현존의 유한한 조건으로부터 하나의 절대적이고 정언적인 요구를 도출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종교를 통해 생태위기 문제를 극복할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Ⅲ. 불교사상을 통한 생태위기의 해결방안
1. 연기(緣起)에 기초한 불교의 자아이해
생태위기의 원인으로서 비판의 초점이 되어온 그리스도교 사상이나 주객이원론적 자연이해, 문화로서의 자연이해, 모두 문제의 핵심이 이원론과 인간중심적 사유에 있음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생태문제를 다루는 제반 학계에선 이 사유가 극복되지 않는 한, 생태위기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다고 본다. 불교가 생태론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문제의 핵심인 이원론과 인간중심적 사유를 극복할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불교학자이자 시인인 스나이더(Gary Snyder)는 현대의 생태위기는 인간과 자연의 본성에 대한 잘못된 견해, 즉 자연이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32) “걷어내라, 정신의 안개를, 독수리 날개 깃털로”라는 그의 시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불교를 통해 인간중심주의라는 안개를 걷어내고 인간과 만물의 상호의존적 연기의 지혜를 발견하도록 촉구한다.
연기사상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연기적 관점은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한다고 보기 때문에 ‘영원하고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제행무상(諸法無常)과 ‘영원한 자아는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를 말하는 것이다. ‘산이 산이 아닌 것은 산이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해석을 넘어서 ‘산은 태양ㆍ물ㆍ대지ㆍ바람 등으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바로 산에 대한 연기적 해석이다. 이는 산이 다른 모든 것들과 존재론적으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시 불교의 연기사상은 대승불교경전인 화엄경에 와서 법계연기(法界緣起)로 해석된다. 이는 세계가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여 우주 전체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중첩되는 연기에 의해 그물망처럼 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인드라망의 구슬이야기’를 통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인드라 제석천이라는 신의 궁전에는 끝없이 넓은 그물이 있고 그 그물코마다 보석이 달려 있는데, 이 보석들이 서로 반사하여 한 보석 안에 모든 보석이 있고 모든 보석에 한 보석이 있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화엄에서는 “하나 안에 일체요 일체 안에 하나이며,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一中一切 一切中一 一卽一切 一切卽一)”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삼라만상을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로 바라보는 화엄의 세계관이 바로 ‘법계연기’이다.33)
이러한 연기사상에 입각하여 불교에서는 자아를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지구의 모든 것들과 상호 연결되어 그 존재를 공유하고 있는 상호존재(interbeing)로 본다. 이러한 존재적 관계망 속에서 자아를 이해하는 불교사상은 자아중심적 서구사상과 주객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현대에 주목을 받고 있다. 불교의 무아적 자아관은 자아가 없다는 소극적 해석을 넘어, 연기적 관점에서 삼라만상과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이러한 관계적 존재성에 대한 인식은 우리 자신이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케 하며, 이를 통해 결국 자연의 죽음은 곧 우리 자신의 죽음과 연결된다는 생태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한다. 이와 같이 불교사상은 생태위기를 인간생존의 위기로 인식케 함으로써 인간과 세계, 자연을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도록 촉구한다. 심층생태학을 창시한 아르네 네스(Arne Naess)는 불교에서 데카르트적인 자아를 뛰어넘어 자연의 만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보다 넓고, 포괄적이며, 우주적인 자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34)
그러나 불교의 무아는 심층생태학자인 네스가 말한 자기실현의 ‘자아(self)’와 다름을 알 수 있다. 네스는 불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를 수용했지만 자아실현의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네스가 말한 자아실현은 베단타(Vedanta)의 큰 자아 개념과 유사하다. 네스는 베단타의 큰 자아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무아를 말하는 불교와 다름을 보인다. 불교는 자아－큰 자아이든 작은 자아이든－를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니르바나는 자아가 사라지는 경험이다.35) 이런 점에서 심층생태학은 불교와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의 무아관은 분명 인간이 삼라만상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케 해준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앞서 심층생태론에서 살펴보았듯이 불교도 생태문제를 책임지고 풀어갈 주체의 문제가 남아있다. 이에 대해서는 환경윤리로서의 불교가 지닌 취약점을 다룰 때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불교의 연기사상에 기초한 인간이해는 불성사상을 통한 불교의 자연이해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2. 불성사상을 통한 불교의 자연 이해
불성사상은 일체중생이 부처가 될 가능성으로서의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에 기초를 두고 있다. 종래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에서 불성을 부처가 될 수 있는 힘이나 능력, 가능성으로 보아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로 해석해왔다.36) 그러나 도겐(道元, 1200~1253)은 종전과 달리 ‘실유불성’ 부분을 ‘실유는 불성이다’라고 해석함으로써 실유로서의 불성론을 펼쳤다. 도겐의 새로운 독해방식에 대해 김희진은 도겐이 불성에 대한 심리적인 개념을 우주적인 개념으로 변형시켜 이를 진여(眞如, tathatā)나 법성(法性, dharmatā)과 동일시했다고 해석한다.37) 도겐은 이러한 독특한 해석을 통해 일체중생실유불성을 ‘모든 존재 내에 불성이 내재한다’는 불성내재론적 의미가 아니라 ‘모든 존재가 불성에 내재한다’는 불성현현론적(佛性顯現論的) 의미로 전환시켰다.38) 이로써 도겐은 삼라만상이 ‘불성’이라는 관점에서 하나의 관계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보다 깊은 인식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삼라만상을 불성이라고 볼 때 자연 역시 불성의 존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불도(佛道)에서 말한 모든 중생은, 마음을 지닌 자는 모두 중생이다. (그것은) 마음이 곧 중생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없는[無心] 것도 중생이다. 그것은 중생이 곧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모두 중생이고 중생은 모두 유불성이다. 초목국토(草木國土)는 모두 마음이다. 마음이므로 중생이다. 중생이므로 유불성이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은 곧 마음이다. 마음이므로 중생이고 중생이므로 유불성이다.39)
도겐은 초목국토와 일월성신을 포함하여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는 마음을 지닌 중생이고 중생이므로 불성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해석을 통해 도겐은 유정중심적인 종래의 불성론을 넘어서 무정불성(無情佛性), 무불성(無佛性)을 말하고자 한다. 도겐은 무정에까지 불성을 확대해석함으로써 대지를 우주 전체와 긴밀한 관계성으로 직조된 하나의 법계(法界)로 바라보게 했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무정들이나 산하대지도 진리를 설법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했다.40) 이런 점은 도겐의 정법안장(正法眼臟)에 수록된｢산수경(山水經)｣곧 ‘산과 물에 대한 경전’이라는 이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산과 물에도 방대한 진리의 말씀이 함축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산과 물도 항상 진리를 설하고 있는 경전 자체로 본다. 이와 같이 산과 물을 죽어 있는 자연현상이거나 무정의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들이며, 동시에 진리를 설하는 법신의 존재로 본 도겐의 인식은 정법안장 ｢계성산색(溪聲山色)｣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소동파(蘇東坡)가 시냇물 소리를 듣고 이를 불법의 진리를 설하는 장광설(長廣舌)로 이해했던 것처럼, 도겐도 시냇물 소리와 산빛을 단순한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법신(法身)의 설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도겐은 “올바르게 수행을 할 때에는 시냇물 소리와 계곡의 모습, 그리고 산의 모습과 산의 소리가 모두 팔만 사천의 게송을 아낌없이 설하고 있음을 안다”고 말한다.41) 이런 점에서 도겐은 도(道)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연은 살아 있고, 그 자체로서 언제나 진리를 설하고 있음을 깨닫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겐은 ｢산수경｣에서 ‘청산이 움직인다’든가, ‘산이 살아 있다’와 같이 선사들의 사상 속에서 막연한 선문답으로 이해되어온 것을 사실적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산들은 오랜 세월을 통해 길고도 천천히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을 살아 활동하는 존재로 본 도겐 사상 안에 산을 시간적 존재로 보는 사유가 숨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인간만이 시간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도 바로 시간적 존재라는 것이다. 다만 자연의 시간대가 인간의 시간대와 차이가 있어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산은 항상 정지해 있는 것 같지만, 영겁의 시간에서 보면 산과 강은 활발하게 살아 있고 활동하는 존재들이다. 도겐이 산수를 옛 부처(古佛)의 현현이라고 본 것은 이런 까닭에서이다.42) 자연 역시 시간의 과정 속에 있으며 이미 결정된 체계가 아니라 아직 결정되지 않은 개방된 체계라는 관점은 자연을 단지 물질이나 기계론적으로 보는 관점이나 자연이 완성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 그리고 자연을 닫힌 존재로 보는 이해로부터 자유로와지도록 도와준다. 산과 강과 같은 자연이 죽어 있다고 보는 것은 인간중심적 삶의 속도와 생명관에 갇혀 있는 데에서 생긴 인식이다. 생명과 활동성에 대한 기준을 인간중심적으로 국한시킬 때 산하대지는 죽은 존재가 되며 기계와 같은 존재로 보이지만 참다운 인식에 눈뜨게 된다면 살아 있는 자연을 보게 됨을 우리는 도겐의 직관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도겐의 자연이해를 통해 우리는 자연 역시 인간처럼 살아 활동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더욱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이러한 자각은 우리가 자연과 맺고 살아가야 할 관계성에 대한 전환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즉 이는 자연과 인간 모두 살아 활동하는 존재라는 동질성 안에서의 새로운 관계규명이 요청됨을 말해준다. 이상에서 우리는 연기사상에 기초한 무아 무상사상을 통해서, 그리고 불성을 무정에까지 확대해석한 도겐사상을 통해서, 삼라만상이 존재론적으로 깊은 상호연관성 속에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기사상은 단순히 지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불교전통 안에서 동체대비사상(同體大悲思想)을 통해 드러난다.
3. 동체대비사상을 통해 본 불교적 지혜와 자비의 상관관계
우주 안의 모든 존재가 상호 연관된 하나임을 말하는 연기의 실상은 나의 존재가 다른 모든 존재와 동체임을 자각케 한다. 이와 같은 자아의 확장을 통해 나의 생명이 삼라만상의 생명줄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은 곧 삼라만상의 안녕이 곧 나의 안녕을 의미함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불교는 초기부터 자신을 이롭게 하면서도 타인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자비인 동체대비를 말해온 것이다.43) 이러한 동체대비사상은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에 와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동체자비와 관련된 유명한 구절로 유마경(維摩經) ｢문수사리문질품품(文殊師利問疾品)｣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들 수 있다. “일체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이 들었다. 모든 중생들에게 아픔이 남아 있는 한, 내 아픔도 역시 계속될 것이다”44)라고 말한 유마거사는 자기 몸과 중생의 몸이 한 몸임을 통찰한 것이다. 중생이 병이 다 나아야 나의 병도 낫는다는 유마거사의 표현은 중생의 아픔을 몸으로 함께 하는 동체대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자비행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무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정보(正報)로 자연을 의보(依報)로 보며, 양자 간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의정불이(依正不二), 신토불이(身土不二)로 표현한다.45) 우리 몸이 자연의 몸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의정불이 사상은 연기적 세계관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지율스님의 단식투쟁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다. 그 당시 스님은 “굴삭기가 천성산 꼭대기에서 산을 무너뜨릴 때 마치 산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고” 그때 스님은 산에게 자신이 구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 후 스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투를 하며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단식했다. 이러한 지율스님의 단식투쟁은 “자연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라는,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의정불이(依正不二)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동체대비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이 병이 다 나아야 보살의 병도 낫는다는 동체대비사상은 불교적 지혜인 연기와 자비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삼라만상의 존재가 하나의 관계망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적 존재론에 입각한 동체대비사상은 생태위기의 해결을 위한 지혜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본다.
이상에서 우리는 불교의 연기와 동체대비사상이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서구사상계가 지닌 이원론적 사고와 인간중심적 사유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생태위기의 근원적 문제를 보게 해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사상은 환경윤리로서 자리매김하기에 몇 가지 취약점을 지니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4. 환경윤리로서의 불교가 지닌 취약점
불교가 환경윤리로서 자리매김하기에 부족한 취약점 중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실천 문제이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 실천의 조화를 지닌 논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사회적 실천면에서 부족함을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스나이더(Gary Snyder)는 불교가 자아의 본성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지니고 있으나, 그러한 인식을 사회적 차원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전통 불교 혹은 제도화된 불교는 개개인의 구원에 치중한 나머지 역사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고, 이런 현실도피적인 태도가 사회적 실천면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했다는 것이다.46) 이와 같이 불교가 개인 구제를 위한 수행과 깨달음을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소홀해왔다는 점은 불교가 환경윤리로서 자리매김하기에 부족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불자들이 지향하는 깨달음의 목표는 영적ㆍ윤리적 실천 간에 통합적 관계를 이룸에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추구하는 깨달음의 세계는 세상과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감에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궁극적 깨달음은 윤리적 관심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에고이즘과 갈망으로부터 벗어나 존재적 상호연관성을 깊이 깨달아 삼라만상에 대한 자비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개인의 성화를 사회적 실천으로 승화시킴에 있어 미비한 점이 드러나고 있음이 불교적 현실이다. 스나이더는 이런 관점에서 불교의 승가라는 공동체 개념을 승려들의 수행공동체 범주를 넘어서 생태의 모든 구성원을 포함하는 생명공동체로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승불교의 위대한 지적 업적을 공동체적인 삶의 양식으로 복원하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불교의 전통이 상실한 ‘완전히 통합된 삶의 양식’을 되살리도록 불교 안에 변혁을 촉구하는 충언이라 할 수 있다.47)
안나 피터슨은 불교적 관점이 이원론과 인간중심주의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음이 사실이지만,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생태위기와 관련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환경철학이나 환경윤리는 행동을 결정짓는 예견할 수 없는 방식들이나 복잡성, 변화무쌍함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화 속에서 발생될 수많은 위험한 가능성에 대해서 불교는 과연 대처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안나 피터슨은 의심한다.48) 이는 불교전통은 시대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해석학적 응답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선불교 전통에서 강조해온 깨달음은 선악의 판단마저도 초월하는 초도덕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깨달은 선사의 경우는 윤리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윤리적 행위를 하게 될지 모르나 자칫 깨닫지 못한 범부의 입장에서 이를 곡해하여 윤리적 차원을 소홀히 할 위험성이 불교 안에 내재되어 있음도 사실이다.49) 또한 불교는 모든 생명체를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이해관심과 비인간의 이해관심이 상충할 때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동일한 가치선상에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야기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필요들(vital needs)에 따른 명확한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상에서 살펴본 사회적 실천문제, 초도덕성의 문제, 평등주의의 문제 이외에도 환경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무아를 말하는 불교는 윤리의 주체 역시 문제가 된다. 불교는 모든 존재가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상호의존적이라는 연기적 논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상호연관성(interconnectedness)을 설명한다. 이러한 상호연관적 존재이해에서 볼 때 궁극적으로 어떠한 목적론적 가치의식도, 주체의식도 사라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전체주의적 관점을 지닌 불교는 각 개체가 전체 속에 함몰되어 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중도적 무아론을 주장하는 불교학계에서는 자기동일성이라는 본체 없이도 자기책임성을 지닌 주체가 된다고 주장한다.50) 이런 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변치 않고 동일하게 남아있는 기체와 같은 자아가 전제되어야만 도덕적 책임이나 구원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51) 오히려 무아일 경우에만 무한 책임을 지닌 윤리가 성립하므로 윤리성립의 전제는 자아가 아니라 무아에, 그리고 기체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기체없는 주체에 있다는 것이다.52) 이와 같이 고정불변의 실체나 자기동일적 기체라는 본체없이도 수많은 조건들 간의 인과연쇄 과정을 통해 현상이 이루어지며 이런 연기적 현상 속에서 기능적 자아가 능동성과 책임성을 지니고서 자신의 업보를 연출해 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적 무아론이다.53)
그러나 불교계 내에서도 다른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전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 그리고 이후의 존재에 대한 자아 동일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도덕적, 구원론적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봄으로써 자기동일성을 지닌 하나의 연속적 주체개념이 요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54) 이와 같이 주체의 문제는 붓다의 근본 가르침인 무아와 연결된 부분으로 이와 관련된 숱한 견해가 불교 내에 다양한 사상을 낳게 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필자는 여기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룰 의도가 없으며, 다만 불교 안에서 지금까지도 논쟁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이 문제가 현대사회 안에서 요청되고 있는 책임윤리의 주체성 문제와의 연결선상에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적 인간이해가 오늘날 요청되는 책임윤리에서의 주체의 중요성을 자칫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2000년대의 화두는 “미래를 위한 세계공동체의 책임”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공동세계(Mitwelt), 환경(Umwelt), 후대(Nachwelt)에 대한 책임의 문제이다. 한스큉은 오늘날 윤리적 근본정위는 우리의 미래전략의 주요 개념을 “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책임”, 즉 “지구적 책임”(planetarische Verantwortung)으로 상정하고 있으며(PW, 51)이를 위해서는 책임윤리가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55) 생태학적 시대를 맞이하여 책임윤리는 한스 요나스에 의하여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한스 요나스의 책임윤리는 우리 지구의 전체 생명, 암석, 물, 원자세계를 위한 총체적인 책임의식뿐만 아니라, 미래생존을 위한 인간의 자기통제를 요구함으로써, 자연을 경외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새로운 윤리”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현대 생태위기는 이러한 책임윤리를 요청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우리는 책임윤리의 주체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그리스도교의 ‘청지기 윤리’를 통해 책임윤리 주체성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베어드 캘리콧(J. Baird Callicott)은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태도들 중 청지기 개념이 가장 환경적으로 책임있는 행동을 동기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56) 여기서 말하는 청지기 윤리는 자연을 도구적 가치로만 간주해온 종전의 인간중심주의(강한 인간중심주의)와 다르지만, 그 안에 인간중심적인 측면이 잔재해 있다는 점에서 제약된 측면을 지니고 있으므로, ‘제약된 약한 인간중심주의(Chasten Weak Anthropocentrism)’로 칭한다.57)
Ⅳ. 약한 인간중심주의로서의 청지기 윤리
1. 인간의 정체성으로서의 책임성
종래부터 그리스도교는 청지기 모델을 환경윤리의 대안으로 제시해 왔지만, 인간중심적 측면이 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아 왔다. 이와 같이 청지기 모델 안에 인간중심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시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함은 성서가 제시한 청지기라는 인간상이 환경윤리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주체상을 제시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이 문제를 불교가 환경윤리로서 지닌 취약점과 관련하여 언급한 바 있다. 필자는 이 문제의식 안에서 책임과 관련된 도덕적 주체라는 관점에서 청지기의 개념을 새롭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청지기 윤리는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인간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창세기는 인간의 정체성을 두 측면에서 말하고 있다. 사제계(P)문헌인 창세기 1장 26-27절은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묘사하고 있다.58)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에 반해, 야훼계(J) 문헌인 창세기 2장7절은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하여 인간이 흙으로 빚어졌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창세기 1장과 2장은 우리가 ‘신의 모상이면서 동시에 먼지의 존재’임을 말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는 인간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지니고 있지만, 종래에는 야훼계(J) 문헌인 창세기 2장의 해석보다 사제계(P) 문헌인 1장에 초점을 맞추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위상을 지닌 존재가 신학적 인간학의 중심이 되어 왔다. 그리스도교가 생태파괴의 주범이 되었다고 린 화이트가 비판할 때도 ‘이마고 데이’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의 인간학에 대한 비판이었다. 물론 그의 해석이 신의 모상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점이 있지만, 실제로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다른 창조물과 달리 인간에게만 부여된 특권적 측면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강조해 왔고 이런 점에서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는 전통으로 발전해가는 요인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의 모상을 주었다는 성서적 표현은 에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정사상에서 그 역사적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59) 거기서 왕은 신의 이미지로 간주되었으나, 왕과 신의 유사성은 성격이나 외모에서라기보다 그 기능에서 찾아야 한다고 성서학자들은 말한다.60) 다시 말해 성서에서 말하는 ‘신의 모상’은 본질적 측면에서 신과 왕의 유사성을 말한 것이라기보다 창조물에 대한 신의 주권을 드러내기 위한 기능적 측면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모상을 인간의 역할 곧 인간의 소명의 측면에서 해석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능적 측면으로만 ‘하느님의 모상’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존재와 기능을 이원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어떤 목적과 기능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면 이를 위한 존재성 또한 부여받은 것이다.61) 기능과 존재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분리해서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창세기 1장이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본데 반해, 창세기 2장7절에서는 하느님께서 인간(Āḏām)을 처음 창조하실 때 ‘땅(adamah)’에서 창조하셨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땅과 관련된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땅은 경작지(arable land)를 의미한다. 땅에서 창조된 인간에게 인간 본연의 원천인 땅(adamah)을 경작하고 보존하라는 명령이 부여된 것(창세기2:15)은 인간이 자연과 원천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즉 땅(adamah)에서 창조된 존재인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은 땅을 경작하고 가꾸며 땅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농부로서의 소명임을 말해주고 있다.
전통 그리스도교에서는 흙으로 빚어진 존재로서의 인간상(창세기 2장)보다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의 특권적 위상(창세기 1장)을 강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에 대해서 깊이 숙고해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창세기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양면성’과 더불어 ‘하느님의 모상’에 대해서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 정체성의 두 측면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가 제안한 “인간은 창조된 존재이며 창조주의 협력자(created co-creator)”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62)
그는 우선 인간을 ‘창조된 존재’라고 표현한다. 즉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지 않았으며, 인간의 삶은 부여받은 선물, 곧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엇에 의해서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창조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세상이 인간에 앞서 존재했음을 말하며, 따라서 세상은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께 속함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이 흙(자연)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질서 안에 하나의 직물과 같이 얽혀 짜여 있는 존재 곧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말한다.63) 이러한 표현은 화엄경의 인드라망 비유에서 살펴본 상호연관성을 지닌 존재망과 흡사하다. 이와 같이 헤프너는 인간을 ‘창조된 존재’로 봄과 동시에 ‘창조주의 협력자(co-creator)’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존재로 본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지녔다는 창세기 1장에 기반을 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이 창조주의 협력자라는 역할을 지녔다는 것은 창조된 세상을 가꾸고 돌봐야 할 책임성을 부여받은 존재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창조된 존재이며 동시에 창조주의 협력자’라는 두 측면은 인간을 ‘청지기’라는 표상으로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청지기(steward)와 생태학(ecology) 간에는 집(house)이나 집안살림(household)을 뜻하는 그리이스어 오이코스(oikos)와 어원학적 연관성이 있다.64) 신약성서(루가 16:2-3, 디도1, 7, 베드로전서 4:10)에는 관리자나 감독관이라는 뜻을 지닌 오이코노모스(oikonomos)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이는 집의 의미를 지닌 오이코스(oikos)와 ‘분배하다’ 또는 ‘관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네모(nemo)에서 파생된 것으로 ‘책임이 수반된 관리인’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청지기란 주인대신 집을 관리할 책임을 진 관리인을 뜻한다.65) 존 홀(J. D. Hall)이 말한 “인간은 하느님과 그 창조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라는 표현이나,66) 칼빈이 말한 “모든 사람은 신의 관리자,” 소워(E. Sauer)가 말한 “인간은 지구적 창조의 치유를 위한 도구”라는 표현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67)
레오나르도 보프(1938－)는 “인간에게 부과된 책임성은 세상에 대한 인간적 자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 이전의 것이고 피조물적 존재로서 인간 안에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68) 이는 책임성이야말로 인간이 창조때부터 부여받은 인간 본래의 정체성임을 의미한다. 보프의 표현대로 책임성이 본래 창조때 인간에게 부여되었다는 사실은 책임성을 부여받은 존재로서의 ‘청지기’야말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인간임을 뜻한다. 필자는 ‘하느님의 모상(Imago Dei)’ 안에 함축된 의미를 통해 이를 보다 깊이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공동체적 주체로서의 하느님의 모상(Imago Dei)
필자는 청지기 윤리를 환경윤리의 대안으로 제시한 이유로서 환경파괴의 책임을 질 주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여기서 말하는 주체는 데카르트가 말한 합리적 사유의 주체(ego cogito)와 다르다. 데카르트가 내세운 주체개념으로 근대 주관주의 철학이 시작되었고 중세까지 우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원리로 대표되던 신성의 자리에 인간의 이성이 대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체개념이 자기 존재론적 욕구를 채워가려는 인간중심주의적 사유를 가져온 것이다. 인간이 창조때부터 책임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부여받았음은 인간이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한다. 책임을 부여받았음은 자기 외의 존재와의 관계 속에 성립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기존의 윤리학에서 행위주체인 개인이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하여 발생하는 책임이론과는 다르다. 이 책임은 내가 나의 자유의지에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나 타자를 위해 베푸는 동정이나 연민 이상의 동기가 있다. 인간중심적이고 자아중심적인 책임감으로는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생태위기를 극복하기가 어렵다. 생태 파괴가 사회적 문제라는 측면에서, 우리 자신을 다만 한 개체적 주체로만 보는 것으로는 그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기가 부족하다. 이는 사회적 문제를 당위적 과제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해결을 위해 뛰어들 주체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바로 그런 책임감을 지닌 주체는 개체적 주체가 아니라 공동체적 주체인 것이다. 이런 측면과 연관지어 필자는 공동체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정체성을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중심표상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창세기 2장7절은 “하느님께서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야훼께서 불어넣으신 숨이 하느님의 생명 자체임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지녔다는 것은 하느님의 생명 곧 그의 존재성을 지녔음을 뜻한다. 하느님의 존재성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三位)의 관계적 일치 안에서 드러난다. 이와 같이 하느님을 삼위의 역동적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해할 때, 인간의 존재성 또한 삼위의 관계적 사랑 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69)
삼위의 관계 안에서 신의 본성은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를 주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창조해 가는 것이다. 신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물과 더불어 존재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본성을 부여받은 인간 역시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창조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단독자로서의 존재성을 지닌 창조물이 아니라, 하느님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성 속에서 비로소 그 정체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자기완성도 단독자로서가 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세계와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 창조의 협력자로서 세상구원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관계적 존재성을 지녔다는 관점에서 환경파괴라는 전 지구적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성은 인간의 자기실현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자아는 단독자로서 타자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며, 타자와 불가분의 관계성을 지니면서도 결코 자아가 타자의 일부로 흡수되어 버린 존재도 아니다. 이 주체는 타자와 나와의 관계를 ‘둘이 아니면서 또한 하나가 아닌 관계’(不二而不一)로 인식하는 존재로서 공동체적 주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청지기라는 표상과 연관지어 볼 때, 청지기는 자신과 타자(자연을 포함한) 그리고 신과의 관계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찰하는 공동체적 주체인 것이다.
루이즈부로크(John Ruusbroec, 1293-1383)의 인격개념은 관계적 존재성을 지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70) 루이즈부로크는 인격의 핵심은 내재적이며 근원적 본성(intrinsic fundamental nature)이라기보다, 초월적 관계(transcendent relationship)에 있다고 주장한다.71) 이와 같이 인격의 핵심이 각 개인의 본성이라기보다 초월적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인간은 정체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 계속 창조되어 가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과거에 한번 창조작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창조(creatio cintinua)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인간이 그 모상을 지녔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완전한 하느님의 모상을 부여받았다기 보다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창조되어 가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성서는 인간이 나아가야 할 지속적 창조의 모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성경은 예수의 삶과 행적을 통해 청지기로서의 직분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방식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청지기 직분은 참된 청지기인 예수께서 하신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예수의 삶과 행적은 하느님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통치와 다스림에 있지 않고 ‘섬김과 봉사’에 있음을 우리는 예수의 삶과 행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청지기는 예수를 본받아 섬김과 봉사를 통해 세상을 가꾸어 나가고 잘 관리하도록 부름받은 주체적 존재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존귀와 영예의 관을 씌워 주셨지만(시편8), 이는 지배자로서의 특권이 아니라 만물을 돌보라는 ‘위탁’(commitment), 곧 청지기로서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예수 안에 완성된 이마고 데이로서의 인간상은 그에게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도 바울로는 골로사이서 3:9-10에서 예수를 통해 완성된 인간상이 우리와 거리가 먼 하나의 이상이 아니라 참된 가능성으로 주어졌음을 말한다.
그리고 거짓말로 서로 속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 버렸고 새 인간으로 갈아 입었기 때문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와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골로사이서 3:9-10)
생태위기의 문제는 현대세계가 지닌 모든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 논문은 이러한 일련의 문제 속에 얽혀있는 ‘실타래의 끝’을 찾고자 하는 시도였다. 본 논문의 고찰을 통해 그 실타래의 끝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 인간의 정체성은 사회적 문제에 책임감을 자각하는 주체 다시 말해, 개체적 주체성을 넘어선 공동체적 주체성의 자각에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태위기 극복은 관계적 정체성을 지닌 공동체적 주체로서의 나를 자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것은 관계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책임적 윤리실천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닐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청지기’라는 인간상을 환경윤리와 관련하여 현대생태위기의 제반문제를 풀어갈 공동체적 주체로서의 존재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청지기라는 은유가 성경에 기반을 둔 개념이며 신과의 연관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이 불교공동체와의 대화의 필요성을 남겨두고 있지만, 필자는 청지기로서의 인간상을 그리스도교에 국한된 인간상으로서가 아니라, 현대 생태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를 지닌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표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Ⅴ. 결 론
오늘날의 생태위기는 파괴된 환경을 복구해야 한다는 차원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현대 생태위기가 우리의 실존을 위협하는 절박한 문제로 우리 앞에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급한 현실적 당면 과제는 우리에게 생태위기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주체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됨을 말해준다.
한스큉은 세계윤리구상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우리의 전지구적 책임은 지금처럼 이렇게 심각한 적이 없었다. […] 왜 우리가 전지구적 윤리를 필요로 하는가는 너무나 분명하게 되었다. 세계도덕이 없는 생존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통일된 종교나 통일된 이데올로기와 같은 전체주의적 통일성의 이념이 아니라, 상이한 세계종교들의 존재와 문화－전통적 다양성 위에 기반을 둔 세계적 구속성을 가진 가치와 이상, 즉 “세계도덕”(Weltethos)이라는 것이다. 한스 큉은 이러한 문제 상황 속에서 세계종교의 도덕적 측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모든 종교 속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도덕성의 지반을 확보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스큉이 말한 현대사회가 요청하는 세계도덕이 생태위기 해결을 위해서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본고는 세계도덕으로서 실천가능성을 지닌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상호 협력보완의 필요성을 고찰하고자 한 것이다.
불교는 분명 생태파괴의 주요요인이 되어온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이론의 틀을 지니고 있다. 연기사상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깊은 자각과 불성사상을 통한 자연의 내재적 가치에 대한 자각이 그것이다. 또한 불교는 동체자비적 실천력을 지닌 종교로서 철학적 사유에 머무를 위험이 있는 심층생태학의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불교는 사회적 실천문제, 초도덕성의 문제, 평등주의의 문제, 책임윤리의 주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생태윤리로서의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 중 오늘날 생태윤리가 요청하고 있는 책임윤리의 주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청지기 모델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교 성경이 제시하는 청지기라는 인간상은 단순히 땅을 지키고 가꾸는 직분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창조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창조주의 협력자’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청지기로서의 인간은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되, 결코 자연 안에 함몰되어 주체성을 상실해 버린 존재가 아니라, 생태위기를 극복해 가야할 도덕적 주체로서의 책임성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이상에서 필자는 세계도덕으로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협력을 통해 생태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두 종교 모두 세계도덕으로서의 혜안과 함께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상호보완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현대의 생태위기 문제를 풀어가야할 책임있는 동반자로서 상호대화를 통해 세계도덕적 혜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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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접수: 2008년 11월 21일 1차심사: 11월 30일 게재승인일: 12월 4일
연구자 소개: 최현민
① 전공/소속: 종교학 불교전공, 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 씨튼 연구원
(종교간의 대화) 원장
② 관심영역: 종교간의 대화, 종교와 환경문제, 종교와 과학 간의 관계
③ 주요논저: ｢道元의 修證觀｣－正法眼藏 ｢佛性｣卷을 中心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04. ｢히사마쯔 신이찌(久松眞一)의 禪思想｣, 서강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1995.
④ E-mail: chm741@hanmail.net
최현민, ｢道元의 修證觀｣－正法眼藏｢佛性｣卷을 中心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04.
Abstract
Buddhism and Christianity as Partners for
Overcoming Eco-Crisis
Choi, Hyunmin
A Visiting Professor in Religious Studies of the Sogang University
We propose the curative way to overcome eco-crisis through religions.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in Buddhism provides the way to resolve dualism and anthropocentrism. Dependent Origination helps us to recognize that human beings and the other beings are linked as one entity. Dependent Origination is not only a view of wisdom, but it is also a view of compassion. It means that Buddhist enlightenment is completed through the practice of ‘One Body of Great Compassion.’ In this point of view, the idea of the Great Compassion based on the Dependent Origination, offers the possibility of solution to eco-crisis. However, there are a few limitations in Buddhism that could become detrimental to environmental ethics. They are: the problem of social practice, amorality, moral subject in respect of responsibility. How can we address these issues and overcome the problem of amorality and moral subject?
We have an answer to these problems in the stewardship ethic of Christianity. This should not be mistaken for “superiority dimension” that humans can have dominion over nature; on the contrary, this involves the “responsibility dimension” that God has handed over to humans the responsibility to guard and protect nature. Human beings as stewards have been imposed with responsibility to take care of the world. So, human beings as collaborators with God are expected to work and care for world, in nature, with nature and through nature.
Key words : Human centered view, Eco-centered view,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in Buddhism, The idea of the Great Compassion based on the Dependent Origination, Stewardship ethic of Christianity, World ethics through interreligious dia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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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H. Dembowski, “Naturliche Theologie und Theologie der Natur, in: G. Altner (Hrsg.)”, Okologische Theologie: Perspektiven zur Orientierung, Stuttgart, 1989, p.30-37.
2)Anna L. Peterson, Being Human: Ethics, Environment, and Our Place in the World.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1, p.15.
3)Lynn White Jr.,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Science 155 (1967), pp.1203-1207.
4)R.F. Nash. In: The Rights of Nature: A History of Environmental Ethics,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Madison, WI (1989), p.90.
5)J.A. Nach, Loving Nature, Ecological Integrity and Christian Responsibility, Washigton. D. C. 1991, p.104.
6)C. J. Gla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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